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손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나의 점수 : ★★★★
루이스 캐럴은 로리콘입니다.
진성 로리콘 맞고요....한 소녀를 향한 어느 로리콘의 애정이 낳은 역사적인 걸작.
…아니, 농담이 아니라 루이스 캐럴(본명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은 정말로 로리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여자애를 위해 이야기를 꾸미고,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 하니까 자필로 책으로 제본하고 직접 삽화넣고(정식 출판때는 다른 사람에게 맡겼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속편을 써내다니 정말 비범한 애정이죠. 이 사람이 쓴 시 중에는 이런 것이 있는데,
A boat, beneath a sunny sky,
Lingering onward dreamily
In an evening of July―
Children there that nestle near,
Eager eye and willing ear,
Pleased a simple tale to hear―
Long has paled that sunny sky:
Echoes fade and memories die:
Autumn frosts have slain July:
Still she haunts me, phantomwise,
Alice moving under skies
Never seen by waking eyes.
Children yet, the tale to hear,
Eager eye and willing ear,
Lovingly shall nestle near.
In a Wonderland they lie,
Dreaming as the days go by,
Dreaming as the summers die:
Ever drifting down the stream―
Lingering in the golden gleam―
Life, what is it but a dream?앞글자만 따면 Alice Pleasance Liddell, 주인공인 앨리스의 원 모델이자 그가 이 이야기를 바친 소녀의 이름이 됩니다. 두번째 앨리스 책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 서문에는 무려
"이제부터 네 젊은 인생엔 나를 생각할 자리는 없겠지만, 네가 늘 내 동화에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라는 구절까지 있습니다. 우왕ㅋ 굳ㅋ. 이 사람 진성 로리콘이야!
본편에 대한 얘기로 넘어오자면, 이 이야기는 특별한 줄거리가 없습니다. 어느 더운날 언니와 함께 언덕에 앉아있던 소녀 앨리스는 조끼를 입은 토끼 한마리를 발견하곤 그 뒤를 쫓다가 굴 속으로 떨어집니다. 두서없이 생각하고 혼자 주절거리길 좋아하는 이 별난 아이는 지하세계로 떨어진 뒤 길을 잃고 여기저기를 방황하며 돌아다닙니다. 막연한 흥미를 좇아 그때그때 보이는 곳으로 찾아갈 뿐 앨리스의 걸음엔 아무런 방향도 이유도 목적도 없습니다.
줄거리에서 흐름이라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챕터도 문을 앞에 두고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 이상한 코커스 경주, 애벌레, 공작부인 등 기괴한 개별 사건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편제되어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일관됩니다. 아마 아이들에게 그때그때 떠올리며 했던 얘기를 책으로 엮은 탓이겠죠.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소설적이라기보다는 구전에 가까운 감각으로 써있습니다. 서사의 흐름보다는 신비한 이미지와 말장난이 주가 되고있죠.
이야기로서 완성도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이 동화를 불멸의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책 안에 녹아있는 이미지들의 극단적인 기괴함입니다. 부조리한 코커스 경주나 선문답을 하는 애벌레, 뭐든 일단 목을 베고 보자는 여왕 등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들은 체셔 고양이의 말마따나 모두가 "미쳐"있습니다. 상상력이 극한으로 펼쳐진 것이 자유분방함이 넘치다못해 광기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무질서한 이미지의 나열이라고 하기엔 각 요소들이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듭니다. 흰 토끼가 그리는 소시민상이나 여왕의 재판이 그리는 사법제도(거시적으로는 제도권 전체)의 부조리 등 풍자가 인물과 이미지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일 주제전달을 위해 목적지향적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그냥 기괴한 이미지로서 지하세계 전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루이스 캐럴은 지면 아래에 세상의 다른 얼굴을 그려놓고 그것을 "모두 미쳤다"고 표현하지만, 직접적으로 지상의 무언가를 지목하는 대신 그 일그러진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일관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동화는 캐럴 본인의 무의식 혹은 꿈에 가까우며, 실제로도 이야기는 앨리스의 꿈으로 결말이 나지요.
목적지향적으로 만든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 이야기에 대해 주제의식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고, 따라서 목적을 위해 일부러 왜곡하지 않는 한 당연히 그 사람이 가지고있는 세계관과 속해있는 문화권이 바탕에 배어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루이스 캐럴은 그 무의식을 적극적으로 이미지화 하는 작업에 성공했으며, 그 결과 앨리스는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기괴한 고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최근 판타지에서 "환상"이 차지하는 기능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는데, 이 동화는 환상문학에서 환상이 차지하는 가장 본질적인 기능을 원형 그대로 보여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지는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대상을 지시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의 보다 본질적인 기능은 대상 아래에 녹아있는 근원적인 정서를 그려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세상은 기괴하다"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서 우리가 새로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문학은 지시적인 언어 이상의 체험을 얻기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환상문학은 그 수단으로서 환상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가능성을 일궈낸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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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리플은 미라지에...^^)
에에.. 이 글은 추천글에 올려두겠습니다.
오래간만에 읽는 서평이라서 참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