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를 여는 BGM

No Problem - Duke Jordan

쪼가리 : 라캉의 학문이 철학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

예의 그 라캉 논쟁. 제 글에 한윤형님의 답글이 붙어서 저도 응답하게 되었습니다.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 하늘빛마야

라캉 논쟁에 대한 생각 정리 - 한윤형 님

위 글에 달린 덧글

과학에서 인증받지 못한 정신분석학이 철학적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변 - 한윤형 님

…의 순서대로 의견이 오가고 있습니다.



1. 즉, 라캉의 학문은 과학이 아닌 철학이며, 그가 갖다붙인 "일견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임상결과와 라캉의 본 주장 사이의 접점은 미미하고, 따라서 그 "유사과학적" 논거들이 삐끗했다고 라캉의 전체 주장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군요. 그런데 라캉이든 융이든 프로이트든 정신분석의 대상은 "무의식" 아닌가요? 무의식이 과연 인간의 실제 생각이나 심리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 영역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무의식은 인간"성"이라든가 진리"성"과는 달리 실체적인 탐구대상이지 않습니까.

위의 얘기대로라면 라캉은 인간의 정신(무의식)을 탐구하면서 인간을 관찰하지 않는 학자가 되어버리네요. 망원경을 보지 않는 천문학이며 현미경을 보지 않는 미생물학이로군요. 인간의 정신은 천체나 미생물과 다르다는 반박이 올지도 모르지만 무의식이 실체적 탐구의 대상이라는 전제를 긍정한다면 이 비유가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이론물리학자들도 실험보다는 수식에 매달려 씨름하지만, 그들도 검증하는 순간에는 입자가속기나 전파망원경을 붙잡지 않습니까. 실체적 탐구에서 실체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죠[←기괴한 동어반복].

만약 무의식이 "이데아"와 같은 사변적인 개념이라고 한다면, 개념적으로 그게 가능한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라캉의 학문도 철학으로서 유의미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라캉의 논리는 마땅히 쳐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저에겐 한윤형 님의 라캉에 대한 설명이 천체의 운동을 음양오행설로 설명한다는 얘기와 비슷하게 들리고 있거든요. 데리다가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아닌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2. 이건 대륙철학자들에 대한 비판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륙철학자들의 방법론은 추상적인 대상을 추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지만 라캉의 경우 (윤형님의 논리를 따르자면) 구체적인 대상을 추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전 철학 전공은 아니지만 대륙 철학자들이 하는 논의의 대부분은 현 과학이 규명하지 못했거나 애초에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규명할 수가 없는 것들로 알고있습니다. 과학이 다루지 않는 영역에 대한 논의에 과학이 간섭할 이유는 없습니다. 분석철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영역을 다룬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분석"철학"이지 과학은 아니며, 분석철학과 대륙철학 사이의 우열을 쉽사리 단정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철학이 추상적인 영역에만 머물러있는 한 과학은 철학에 손대지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이 실체적인 대상을 논하기 시작할 때(궁극적으로는 이렇게 되어야겠죠) 철학은 마땅히 (실체적인 대상을 탐구하는 학문인)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검증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철학이 제시하는 인간상이 구체적인 심리(혹은 무의식)에 대한 논의로 확대된다면 당연히 이것은 심리학적 검증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지 평가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위해 과학적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대륙철학의 추상적인 방법론을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탐구의 대상이 추상적인 것에서 실체적인 것으로 넘어가면 탐구 방법도 실체적인 방법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륙철학이 비판받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법론이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실체적 영역의 학문들과 교류하며 해당 영역에서 검증받기를 게을리했다는 것이 진짜 문제 아닌가요?

3. 그리고 저는 현재의 과학적 성과들을 철학이 마땅히 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제가 바뀌었으면 논리를 재구성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건 과학이냐 철학이냐 이전에 모든 학문이 마땅히 견지해야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논리 정해놓고 거기에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학문이 아니라 도그마일 뿐이겠죠.

그것이 꼭 기존 철학의 "폐기"로 이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이 지녔던 그리스 시대의 우주관을 견지하는 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역사의 유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여기에 새로운 주석을 붙이고 논리를 수정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하여 살아남았습니다. 프랑스 관념론인들, 여타 고전철학인들 다르겠습니까? 과학적인 성과를 철학에 적용한다고 해서 기존 철학을 통째로 들어낼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이로써 데리다도 안심할 수 있겠죠.

만약 과학적 성과를 반영했더니 정말로 대륙철학을 통째로 들어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그건 그동안 대륙 철학이 소통을 거부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허우적댔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당연히, 그러지 않았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P.S. 위의 논의는 무의식이 실체적 탐구대상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성립하지 않는 반박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의식이 추상적인 개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y 하늘빛마야 | 2008/03/21 19:34 | 누리그물 유희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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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부분을 "심리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의 유물"이라며 도려내야 할 위험이 있다. 가능한 주장이지만 상당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 것이다. ◎ 쪼가리 : 라캉의 학문이 철학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 - 하늘빛마야 ::: 라캉이든 융이든 프로이트든 정신분석의 대상은 "무의식"이다. 무의식이 과연 인간의 실제 생각이나 심리작용으로부터 ... more

Commented at 2008/03/21 20: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하늘빛마야 at 2008/03/22 15:17
비밀글// 영원히 관념에만 머문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마땅히 수용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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