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를 여는 BGM

No Problem - Duke Jordan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

전편에 이어서 정리 들어갑니다. 정리라고 하기엔 분량이 너무 많지만, 애초에 원 글들이 상당히 긴 데다가 논쟁을 일일이 다 따라가지 않아도 흐름이 이해가 되도록 적는 일에 주력하고 있는지라 분량을 줄이는 것이 만만치 않군요.

저의 최우선 목표는 "배경지식이 없어도 알아들을 수 있게 쓸 것"입니다.

이 글은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라캉과 정신의학, 그리고 관념론 - 노정태 님

::: 나 또한 라캉, 넓은 의미로 정신분석학이 의학으로서의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본다. 만약 정신분석학이 의학이라면 우리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듯이 전기 라캉의 텍스트를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인간의 정신, 마음 일반에 대한 연구이기 이전에 프로이트와 융, 라캉 등의 텍스트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와의 직접적인 대면 및 임상을 거치는 것일 뿐.

::: 브루스 핑크는 [라캉과 정신의학]에서 정신분석에 호의적인 프랑스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암시에 쉽게 빠진다고 하였다. 정신분석의 경우 분석가의 개인적인 '치료자로서의 아우라'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분석 그 자체가 정신분석적 의료행위의 본질임을 생각하면 이런 것을 과학적인 의료행위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 게다가 핑크의 책에 따르면 정신병에 대해 "사실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정신질환 중 상당수는 일반적인 의학적 방법론을 통해 과학적으로 분석되어 적절하게 치료되고 있다. 그러나 라캉의 말대로라면 (그가 말하는) 정신병은 치료가 아예 불가능하다. 이건 라캉이 말하는 정신병이 우리가 아는 정신병과 다른 무언가를 지칭한다 한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지젝은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라는 말까지 하는데, 정신분석이 진지한 의학이라면 설령 비유라고 해도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러므로 라캉은 프랑스에서 아무리 권위가 살아있다 해도 애초에 개념상 과학일 수가 없다. 심리학은 이미 나름의 방법론을 갖추어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으니, 억지로 심리학이 되려할 게 아니라 차라리 과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라캉을 인류학과 유사한 관념철학으로 재가공하는 편이 낫다.인류학의 연구방법론을 차용하여 인문학을 하는 편이 낫다. 지젝 류의 문화비평은 그런 작업이라고 본다. 어찌하여 철학이 과학의 권위에 빌붙어서 자기를 변명해야하는 위치로까지 떨어졌는가?



논쟁의 효과,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 - 한윤형 님

::: 동감이다. 철학, 더 나아가 인문학의 추락이 가슴아프다.
※ "레비나스"라는 분이 길게 덧글을 달았다게 삭제되었음.


[참고 : 라캉적 임상 진단 및 치료 - 노정태 님]
[참고 : 1000명 - 아이추판다 님]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 - 아이추판다 님

::: 한의학이나 라캉류 정신분석학 등 유사과학을 주장하는 이들은 흔히 과학철학을 인용하면서 기존의 과학과 다를 뿐 자신들도 과학이라고 인정해달라 우기곤 한다. 하지만 과학철학이 그런 유사과학들까지 옹호하진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면 흔히 '과학주의'라고 비난받곤 하는데 그건 과학철학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과학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상을 한번 살펴보자.

::: 소칼은 과학학자들이 인식론적 상대주의자들이며 반과학주의자라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상욱은 "두 진영 모두 과학이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며, 상호주관적인 방식으로 과학연구가 수행되며, 대부분의 경우에 이치에 맞는 방식으로 이론 결정이나 합의 도출이 이루어지며, 많은 경우에 과학은 축적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라며 소칼이 오해한 것임을 지적한다.

::: 이들은 모두 과학이 합리적인 활동이라는 데 동의한다. 다만 차이는 '합리적'이라는 말의 범위다. 소칼은 연구과정에서는 오류와 비합리적인 추론이 사용되더라도, 최종 평가는 완성된 이론과 실험 결과가 얼마나 합치하느냐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것을 과학적 합리성의 본질로 보았다. 하지만 과학학자들은 과학활동이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 내에서 벌어지는 활동임에 주목하며, 이들이 말하는 "합리성"은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지는 제반환경 등을 전부 고려한 '상황적 합리성'이다.

::: 모든 이론에는 각자 설명해야하는 일정한 자연현상이 있으며, 기존 이론으로부터의 반박도 존재하게 된다. 이런 제한조건을 통과한 이론이 경쟁선에 설 수 있으며, 이 가운데서 선택하는 와중에 과학 외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에 따라 과학자들이 수용하는 이론이 달라진다. 이것이 과학학자들이 말하는 "역사성"이다. 하지만 반과학주의자들은 종종 이러한 제한조건을 무시한다. 과학철학의 주장은 과학자들이 지들 멋대로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 이 글에 대한 반론 덧글은 아이추판다 님의 [1000명]이라는 글에 달려있습니다.

한윤형 님// 과학철학을 오해하신 건 아이추판다 님이죠. 쿤은 물론이거니와, 파이어아벤트 같은 경우는 얼마나 막 나가는데요. 물리학과 점성술이 차이가 없다 할 정도니, 한의학자들이 과학철학자들을 인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메타 이론, 과학, 물리주의 - 한윤형 님

::: 심리에 관한 메타이론(철학)이 심리학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아이추판다 님의 주장을 긍정해보자. 그러면 라캉이 아닌 현 심리학의 방법론으로 기존의 철학에 주석을 다는 메타학문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긍정하듯이,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기존 철학이 심리학의 기준에서 봤을 때 전부 쓸모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심리학과 철학의 관계를 다르게 설정하거나.

::: 심리학은 기존의 철학에 대한 메타주석을 다는 것은 커녕 자신의 독자적인 메타이론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심리학은 인간 심리에 대한 일관된 관점 없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전부 활용하기 때문이다. 인간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면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자기 관점이 없는 것이다. 경제학을 보라. 그들은 가정해야하는 열가지 정도의 원칙을 상정하고 이 원칙의 안쪽에서 논리적으로 타당한 법칙을 수립해나가지 않는가. 반면에 심리학은 원칙도 없을 뿐더러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입장이 한 학문 아래에 짬뽕되어있다. 충분히 과학적이지 않은 것이다.

::: 효과가 있으면 뭐든 갖다쓴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심리학에서 임상의 성공 확률이란 정신분석학과 대비되는 심리학의 과학성을 증명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애초에 정신분석학에 비해 과학적이라고 부를만한 "심리학의 입장"이 애매모호한 것이다. 기존 심리학의 성과로 정신분석학을 부정하기 전에 우선 심리학의 과학으로서의 미숙함을 따져볼 일이다. 의학이 한의학을 공박할 수 있는 것은 의학의 방법론이 정연하기 때문인데, 심리학은 과연 이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아이추판다 님이 대는 과학주의의 잣대에서 볼 때는 심리학 역시 과학이라기보다는 그 경계선에 걸친 잡탕학문에 가깝다.

::: 과학은 엄밀한 분석을 위해 일정한 과학적 전제들을 놓고서 논의를 진행한다. "인간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전제가 없이 경제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전제들이 완전한 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학문들에 자신의 전제를 그대로 적용해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학문은 비과학적일 수는 있지만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학은 하나의 유용한 지적 체계지 그것만이 진리의 기준은 아닌 것이다.



과학인 것과 과학이 아닌 것 - 노정태 님

::: 심리학이 왜 자기만의 철학을 형성해야 하는가? 오히려 과학은 엄밀해질수록 사전에 전제하는 철학적인 가정을 하나둘씩 벗어던지게 된다. 심리학이 확고한 심리철학에 기반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원칙들을 비롯한, 과학에서 전제하는 원칙들은 그 학문의 철학이 아니다. 단일한 철학적 입장으로 환원되냐 아니냐는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철학적인 비약은 과학으로 제대로 성립하지 못한 학문에서 자주 일어난다.

::: 과학적 인식이 모든 것을 동시에 다루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설정된 제한영역 안에 과학을 가둬두는 것은 아니다. 제한된 영역은 탐구함으로써 한계를 넘어설 수 있으며 그로써 과학은 발전하는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인해 물리학이 뉴튼이 세운 중력에 대한 가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듯이. 과학이 자신의 대상범위를 한정하는 이유는 다만 주장을 최대한 확실하고 합리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이다. 라캉의 거울 이론이 반박된 것도 그것이 과학적인 대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검토를 거쳐 반박된 것이다. 이것은 과학을 과학이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범위 이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이 세상만물을 일거에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알라고 일갈할 일은 아니다. 과학의 한계는 과학자들이 더 잘 안다. 그들은 다만 자신이 파고드는 영역 안에서만큼은 확실히 판단을 내리려 할 뿐이다.



쿤, 과학학, 김재권, 그리고 해킹 - 아이추판다 님

::: 한윤형 님은 과학철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토마스 쿤은 [객관성, 가치 판단, 그리고 이론 선택]에서 과학의 이론을 선택하는 전통적인 기준들(정확성, 일관성, 넓은 적용범위, 단순성, 다산성)을 긍정하고 있다. 다만 이런 기준들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동 저자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그는 훈련받은 과학자들의 집단적인 판단이 점진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것이며 지속적으로 정확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집단적인 판단에 따라 라캉이 비과학적이라 말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 파이어아벤트의 경우, 그가 영향력있는 과학철학자임은 사실이지만 그의 견해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과학철학 안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부류에 속한다. 이런 철학적인 영역으로 논의를 진행하자면 끝이 없기에 과학철학 내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입장에서 논의를 진행하려 한다. 그러니 비판을 하려면 과학철학 내의 일반적인 견해가 다름을 근거로 들어야지 과학철학 안에서도 소수견해인 파이어아벤트를 내세울 일은 아니다.

::: 경제학과 심리학은 모두 자연과학의 영향력 속에서 성장한 학문이지만 서로 상반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경제학은 자연과학의 이론중심적 태도를 따르는 반면에 심리학은 실험중심적 태도를 따른다. 경제학자들에게 이론이 있다면 심리학자들에겐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어 다양한 조건속에서 재현 가능한 확고부동한 실험결과들이 있다.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인가는 설령 '과학주의자'라고 해도 간단히 결론짓기 어려울 것이다.






전과 같이, 밑줄 친 부분은 저 역시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오류 및 오독은 언제고 자유롭게 지적해주십시오.

by 하늘빛마야 | 2008/03/25 14:37 | 누리그물 유희 | 트랙백 | 핑백(4)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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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심리학도나 철학도나. 어쨌든 저는 하던 정리 마저 해치우고 봐야겠습니다.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라캉과 심리학의 화해 가능성 - 이상한 모자 님 ::: 아이추판다 님은 정신분석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 ... more

Linked at Null Model : 라캉,.. at 2008/03/25 21:59

...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a>(하늘빛마야)성공하지 못한 라캉 토벌 작전 (한윤형)<a href="http://azuremaya.egloos.com/4246218" target="_blank">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3)</a><a href="http://azuremaya.egloos.com/4246218" target="_blank"></a> ... more

Linked at 옥탑방의 마야 : 쪼가리 :.. at 2008/03/26 16:05

... . 어쨌든 기나긴 논쟁 유익하게 잘 감상하였습니다. 결말은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여튼 정리는 여기까지.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3) ◎ "과학에서 인증받지 못한 정신분석학이 철학적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 ... more

Linked at 옥탑방의 마야 : 쪼가리 :.. at 2008/03/28 17:49

...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3)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4) 이 글이 이 논쟁에 대한 마지막 글입니다. 결론은 안 난 ... more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8/03/25 17:05
"라캉을 인류학과 유사한 관념철학으로 재가공하는 편이 낫다"는 요약에는 다소 무리가 있군요. 근대 주체철학에 라캉이 끼친 영향을 보전하고자 한다면, 심리학의 흉내를 내기보다는 인류학의 연구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이건 제가 인류학에 대해 잘 알아서 하는 말은 아니고, 타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 내면을 연구하는 인문학 중 '과학주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분과 학문이라고 생각해서 든 예시입니다.
Commented by 하늘빛마야 at 2008/03/25 17:36
노정태 님// 반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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