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를 여는 BGM

No Problem - Duke Jordan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3)

이거 슬슬 흐름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고 있습니다. 전부터 표현들이 살짝 격하긴 했지만 이젠 슬슬 위험할 정도로 날이 서가고 있는 듯. 하긴, 남의 얘기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심리학도나 철학도나.

어쨌든 저는 하던 정리 마저 해치우고 봐야겠습니다.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라캉과 심리학의 화해 가능성 - 이상한 모자 님

::: 아이추판다 님은 정신분석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주류 심리학"에 포섭되지 않았기에 비과학적이며, 따라서 철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몇가지 문제가 따른다. 우선 마음의 문제가 과연 과학적 방법론의 대상이 되느냐가 문제다. 현재 심리학은 마음의 문제에 대해 일관된 관점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분과마다 사람의 마음에 접근하는 관점이 다르며 이 모든 관점이 가능한 접근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입장이 없는 이상 정신분석적 접근법에 대해서도 옳다 그르다 재단할 길이 없다.

::: 과학적 방법론을 차용한 임상심리학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신분석학에 대해 과학자 집단의 권위를 주장할 만큼 확고한 위치에 있지 않다. 물론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심리학이 경시되는 것은 사회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미국은 필요에 의해 심리학을 발전시켰고 그에 따라 권위가 붙게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의사의 영향력이 강했기에 임상심리학자들은 지금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관점이 정신분석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정신의학계의 헤게모니 문제라면?

::: 라캉의 정신분석은 일관된 이론의 틀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며, 과학적 방법론이나 임상보다는 이 시도에 라캉의 가치가 있다. 특히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과학적 방법론을 오롯이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은 새겨들을만하다. 인간의 인식은 언어로 되어있는 이상 과학적 방법론이 아닌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라캉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확실히 문제지만 주류 심리학에서도 라캉의 이론에 대해 보다 개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정태 님 : 과학은 하나의 철학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애초에 심리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지 철학적 관점에는 관심 없다. 그러니 단일 입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해서 심리학을 미숙한 과학이라 할 수는 없다.

임상심리학이 의사만큼의 지위를 못 누리는 것도, 그만한 실적을 내지 못했고 이론적으로도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캉과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연구를 공유하며 검토를 거듭한다는 것. 반면 라캉 학파는 알랭 밀레가 라캉의 유고를 전부 공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에 대해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지식을 대하는 태도'가 정신분석과 심리학의 차이이다.

이상한 모자 님 : 나 또한 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아이추판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심리학 역시 비과학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 임상심리학의 실적이 크냐 작냐는 그 사회의 관점에 따라 달리 보고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임상심리학의 성과에 대해 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을 것인데, 그것이 위에서 말한 헤게모니 문제이다. 라캉학파에 대한 비판은 동의하며 이는 위에서 언급한 "교조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심리학의 과학에 대한 교조주의도 비슷한 수준으로 문제있다고 본다.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 - 아이추판다 님과 노정태 님에게 답변 - 한윤형 님

::: 과학이냐 과학이 아니냐는 철학이 다룰 문제이다. 철학이 메타이론이라는 전제에 긍정한다면 여기에도 물론 긍정할 것이다. 콰인의 경우 과학적 문장은 1차 술어 논리학으로 분석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말대로라면 믿음이나 가능 등을 포함하는 심리학은 물론 경제학조차도 과학이 아니게 된다. 이것을 월권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과학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은 엄연히 철학의 영역이며 분과학문이 스스로 반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 물론 콰인의 정의는 과학에 대한 하나의 입장일 뿐이다. 과학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저마다의 설이 있으므로 명징하게 자를 수는 없고, 다만 경계가 모호한 범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이라는 영역 안에 100% 과학인 지점이 있다고 치면 각각의 학문은 "과학이다/아니다"로 나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얼마나 가깝느냐에 따라 "보다 과학이다/덜 과학이다"로 나뉠 것이다. 나의 주장은, 그렇게 볼 때 심리학이 차지하는 위치도 과학의 중심에서 그리 가깝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정신분석학을 재단하는 일도 신중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 과학이냐 아니냐의 기준을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으로 다루는 노정태 님의 견해는 그 자체로 과학에 대한 과학철학적 입장이지만, 이 또한 명확한 기준이라기보다는 위의 과학에 대한 모호한 범주를 정의하는 데에 사용하는 또하나의 잣대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이 철학을 생산해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는 물론 옳다. 그건 과학이 할 일이 아니라 과학철학이 할 일이다. 하지만 심리학이 대상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보인다면 일정한 철학적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심리학은 이것이 안된다. 철학을 도출하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심리학을 통해 철학을 도출할 수가 없기에 문제인 것이다.

::: 파이어아벤트에 대한 언급은 확실히 부주의한 면이 있었다. 다만 요지는, 한의학 옹호자들이 과학 철학을 인용하여 자기를 변호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콰인 가라사대 - 아이추판다 님

::: 인용이 명백히 잘못되었다. 콰인에 의하면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한윤형 님의 주장과 달리 콰인은 자신의 저서에서 심리학이 과학이라고 명백히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콰인은 철학의 주요 영역인 인식론을 심리학에 편입시켜버린다. 인식론이 심리학에 포함된다면 과학철학마저도 심리학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다.

::: 그리고 파이어아벤트가 과학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맞는데, 한의학이나 라캉주의자들이 이것으로 자기를 변호할 수는 없다. 라캉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신분석학을 과학과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인데, 파이어아벤트는 정신분석학과 과학을 모두 샤머니즘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버리니까.


윤형 님 : 심리학이 아이추판다 님 정의대로 마음에 관한 학문이라면, 병든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이론이나 방법론이 의미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표지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이 "정신의학"이 아닌 이상은 임상이 아닌 다른 방법에 의한 검증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실험주의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치유율 하나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이것이 자동적으로 유일한 검토방법이 되는 건가요? 치료와 무관한,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이 자리잡지 않은 영역에서는 인문적인 탐구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한의학과 비교를 하시는데, 의학의 경우 이미 과학적 방법론이 완벽하게 자리잡아 대부분의 문제를 이로써 규명가능하니 심리학과는 입장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심리학은 아직 과학 자체의 역량으로 온전히 자신을 규명할 수 없는 상태 아닙니까? 그렇다면 아직 탐구되지 않은 영역에서 인문적인 연구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 하늘빛마야

::: 라캉의 이론이 (현 단계에서) 과학적인 엄밀함이 부족한 것에도 동의가 있고, 철학이 메타학문이라는 점에서도 모두들 동의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논쟁이 붙고있는 걸까? 라캉의 이론이 철학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그 이론이 인간 정신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릇된 혹은 증명되지 않은 과학을 기반으로 한 메타논의가 잘못되었다는 얘기에 어째서 이렇게 논쟁이 불 붙는 것인지?

[고백컨대 이 글을 쓸 때는 논의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애초에 낄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라캉 논쟁에 대한 생각 정리 - 한윤형 님

::: 기반이 된 과학이 비과학적이어도 메타이론은 유의미할 수 있다. 본디 철학은 과학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지만 오랜 기간 철학과 과학이 자기의 길을 파면서 과학과 철학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었기에, 어떤 이론이 올바른 메타이론인지 분간하기 힘들어진 탓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의 철학은 오래 전 자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발생하였지만 여전히 현대에도 유의미하며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라캉도 마찬가지다. 과학성이 부정된다 해서 철학성을 자동으로 폐기할 수는 없다.

::: 라캉의 이론이 인간 정신의 일부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지 않는다. 이미 인문학에서 비평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임상의 영역에서 마음의 병을 고치는 데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뿐인데, 임상이 이론의 진리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 정신분석학 뿐이 아니라 심리학 역시 심리에 대해 명확히 해결한 바가 없다면 심리학의 기준으로 정신분석학을 섣불리 비판할 일은 아니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인지에 대한 평가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하늘빛마야 : 전제가 된 과학이 잘못되더라도 철학이 유의미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철학을 현대 과학에 적합하도록 수정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도 칸트도, 쓰여진 텍스트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결코 현재성을 지닐 수 없지만, 연구가들이 난점을 보완했기에 지금도 유의미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라캉 이론의 가치는 현대의 과학적 성과에 따라 수정해야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에 달려있을 텐데, 라캉은 정신분석학입니다. 그의 정신분석이 과학적으로 부정된다면 철학 또한 유의미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임상 이외의 다른 판단 기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비평이나 개인적인 경험이 임상을 대신할 "과학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임상이 아닌 다른 과학적 잣대에 의해 라캉이 옹호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라캉이 유의미함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게 안 되기에 문제가 되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심리학의 경우, 주어진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성과를 내고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여기서 짜르고, 나머지는 뒤로 미루겠습니다.
다음 글을 끝으로 정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제가 오독했거나 내용에 이의 있으신 분들은 덧글로 지적 부탁드립니다.

by 하늘빛마야 | 2008/03/25 21:23 | 누리그물 유희 | 트랙백 | 핑백(3)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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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였습니다. 결말은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여튼 정리는 여기까지.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3) ◎ "과학에서 인증받지 못한 정신분석학이 철학적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 - 하늘빛마야 님께 - 한윤형 님 :::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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