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를 여는 BGM

No Problem - Duke Jordan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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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4)

이 글이 라캉 논쟁에 대한 제 마지막 글입니다.
논쟁은 결론이 안 난 채로 끝난 것으로 보이는군요.





최초에 이 논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라캉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무가치하다"

이 주장에 들어있는 논점들을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이 될 것입니다.

A. 라캉은 심리학계에서 듣보잡이다.
  ┃
  ┠─ a1)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에 속한다.
  ┃
  ┃┌ a2) 심리학은 과학이다.
  ┠┤
  ┃└ a3) 학계에서 듣보잡인 과학은 무가치하다고 볼 수 있다.
  ┃
B. 라캉은 과학적으로 무가치하다.
  ┃
  ┃  b1) 철학은 메타학문이다.
  ┃    │   
  ┠─ b2) 기반이 된 과학이 잘못되면 철학도 틀리다.
  ┃
결론 : 라캉은 철학적으로도 무가치하다.

각각의 요소는 동시에 이 논쟁의 쟁점이기도 합니다. 이 도표를 중심으로 양 측의 논지를 한번 더 정리해보려고 했습니다만, 한윤형 님의 [라캉 논쟁 정리글]을 읽고 나니 그럴 필요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안 쓸거면서 인용한 이유는 만들어놓은 게 아까워서]

한윤형 님 애기에 의하면 라캉의 무의식은 과학적으로 절대 인지가 불가능하며, 검증도 불가능한 완전한 추상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소한 제가 생각하고 있는 "무의식"과는 다르며, 물론 무의식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고 했던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과도 전혀 다릅니다. 한윤형 님은 반대측 사람들이 "라캉의 무의식 개념"에 대해서 모른다고 지적하셨는데, 굉장히 옳은 지적입니다.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이 일반적인 "무의식"과 개념부터가 다르다면 우리가 라캉을 읽지 않고 어찌 이를 알겠습니까.

아이추판다 님은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한 분과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한윤형 님은 정신분석학이 일반적인 의미의 심리학과 거리가 멀며 특히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아예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윤형 님은 이를 위해 심리학을 "사람 마음을 분석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의 광의의 심리학과 "사람 마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라는 뜻의 협의의 심리학으로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분에 의하면 정신분석학은 후자입니다.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에 대한 학문입니다. 무의식은 비록 억압되어 표출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정신 작용에 이것이 있냐 없냐를 논함이 가능합니다. 한윤형 님은 "무의식은 의식에 포착된 순간 더 이상 무의식일 수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최소한 프로이트에게는 그게 "무의식은 과학적 탐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와 동의어가 아닙니다. 개개인 차원에서야 인식이 되면 무의식이 아니게 되지만, 그건 개인의 문제고, 심리학에서 탐구하는 것은 인간 정신에 공통으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이며, 프로이트는 이걸 "임상"으로 검증하려고 했거든요.

한윤형 님은 정신분석학의 옹호자들이 애초에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시작한다 하시는데, 그럼 임상으로 무의식을 논하려고 했던 프로이트는 뭐가 되나요? 정확히 수정하자면 "정신분석학의 옹호자들"이 아니라 "라캉의 옹호자들"이겠죠. 한윤형 님의 말대로라면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은 커녕 기존의 정신분석학과도 전혀 다른 학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무의식"은 더이상 기존의 정신분석학이 탐구하려고 하는 무의식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사변에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갖다붙인 것일 뿐이죠.

요컨대 라캉이 쓰는 "무의식"이라는 용어는 "남성 성기는 -1의 제곱근과 동등하다"는 말의 "-1의 제곱근"과 비슷한 것입니다. 물론 라캉은 정신분석학을 수학보다야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며, 따라서 위의 말처럼 빈축을 살 만큼 수준 낮지도 않겠지만, 과학 용어를 철학을 위해 갖다썼다는 본질 면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 여기에 대해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 전 과학도도 아니고 철학도도 아니고, 라캉에겐 아무 감정 없거든요.

그러므로 이 논쟁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인 셈입니다. 심리학도들이 공격할 부분은 라캉이 심리학(의 일부인 정신분석학)의 용어와 논리를 엉터리로 갖다 썼다는 점이지, 라캉이 잘못된 과학을 하고있다는 부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엉터리라는 말이 공격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라캉의 이론이 임상에서 효용이 없고 심리학계에서 과학적 검토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초기의 가정을 수용한다면 라캉의 "무의식"은 엉터리 인용 맞습니다. 물론 과학 용어를 삐끗 잘못 쓴다고 철학까지 부정되진 않으니 라캉에겐 문제 없겠지만요.

저의 이 논리는 두가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1. 라캉 이론에 대한 (임상만이 아니라 뭐든 간에) 과학적인 증거가 정말 없다.
2. 한윤형 님이 말하는 라캉이 실제 라캉의 이론을 잘 표현하고 있다.

위의 두 전제들이 무너지면 이 글은 무의미합니다. 저의 앎에는 한계가 있고, 특히 양쪽 모두에 문외한인 저는 현재까지 나온 논의를 종합하여 도출되는 결론밖에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위의 전제들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게 제가 내릴 수 있는 최대한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혹 "라캉만이 아니라 정신분석학 자체가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본디 모든 과학은 철학적 입장에서 관점을 잡고 시작해서 실증을 통해 철학적 전제들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정신분석의 대상의 성질을 고려하면, 정신분석학은 독립의 과정에 있는 과학이지 그 자체가 처음부터 철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by 하늘빛마야 | 2008/03/28 17:49 | 누리그물 유희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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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3/28 19: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하늘빛마야 at 2008/03/28 19:51
비밀글// 논쟁중에 인용된 융의 발언이나 프로이트의 태도로 봐도 사실 기존 정신분석학이 그렇게 과학적이었다는 생각은 안 들고 있습니다. 다만 과학으로서 무의식에 접근하려고 노력은 했던 것으로 보여서요. 반면 라캉의 경우 현재까지 나온 얘기를 종합해보면 과학을 아예 배제하고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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