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인비와의 대화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 홍신문화사
나의 점수 : ★★★
유통기한을 넘겨버린 미래 비전.
하지만 여전히 새겨들을 얘기들은 있다.제가 읽은 책의 이름은 [토인비와의 대화]였지만 원제는 [Surviving the Future]입니다. 원래대로라면 국내판 제목을 쓰겠지만, 출판사마다 번역이 다른데다가 범우사가 낸 동명의 책은 [
続·未来を生きる - トインビーとあなたの対話]와 [Comparing Notes : A Dialogue across a Generation]를 한데 묶어놓은 물건으로 생판 다른 책이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원제로 올립니다. 대체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겨. 번역판 제목 통일하고 원제 착실히 표기해주면 어디가 덧나남? 누가 일본에 의존적인 거 몰라줄까봐 원제는 갖다 버리고 일본판의 부제만 뽑아서 제목으로 붙이는 센스하고는.
(이 책의 일판 제목은 [未来を生きる - トインビーとの対話]입니다. 번역된 제목은 그 중 "토인비와의 대화"만 뽑아서 갖다붙인 것이죠.)각설하고, 옛날에는 이 책을 일판 제목 직역해서 [미래를 살다]라고 부른 모양인데, 아무리 봐도 뉘앙스가 많이 어긋난 번역입니다. 원제의 "Surviving"이나 서문에서부터 언급되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은 "미래를 살다"라는 번역구가 주는 느긋한 감각과는 백만광년쯤 동떨어져 있죠. "미래를 살다"보다는 "미래에도 살아남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냉전 체제로 돌입하여 한국전쟁에서 한번 대대적으로 충돌합니다. 1962년에는 쿠바사태로 세계가 핵전쟁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고 60년대 말부터는 기성세대에 환멸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히피문화가 성행했으며 68년에는 프랑스에서 대규모 학생운동이 일어나서 소위 68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두각을 드러내게 됐죠. 그리고 1960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70년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와서도 계속 진행중이었습니다.
그런 1970년에, 1889년에 태어나 20세기의 혼란상을 전부 지켜본 이 역사학 노교수에게, 인류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묻습니다. 이 책은 냉전시대의 위기의식, 동양문명에 대한 동경, 기독교 문화에 대한 믿음, 기성세대의 보수성 등이 혼란스럽게 뒤엉켜서 나타납니다. 위기를 헤치고 인류가 번영에 이르길 바라는 석학의 얘기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결혼과 가정에 대한 그의 보수적인 인식이나 곧잘 신비주의로 날아가버리는 세계관은 토인비씨가 19세기생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킵니다. 인류가 높은 확률로 멸망하거나 단일제국의 독재 하에 떨어질 거라는 전망은
[물론 제3의 가능성도 언급하긴 했지만] 냉전시대의 위기상황을 실감하게 할 뿐 지금 시대에는 와닿지 않고요.
인류가 과거에 비해 평화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당면한 위기가 "소련과 미국의 핵전쟁"과 같은 간단명료한 도식과 동떨어져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토인비씨의 전망이 맞아떨어지지 않은 것이 그의 탓이 아님은 알지만
[60년대 사람들 중 그 누가 소련이 30년 안에 망할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후대 사람으로서 김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토인비씨 같은 석학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묘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이 나온 때로부터 어언 37년이 흘렀습니다.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세계 속에서 "미래에도 살아남는 법"을 논한지 40년 가까이 지난 현재, 썩 평화롭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튼 인류는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많은 예측이 빗나갔고 상황이 변해서 이 책이 애초에 갖고있던 시의성은 이미 퇴색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이 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시의성을 잃었지만 아직 유의미한 화두들도 여럿 있는 만큼, 이에 대하여 20세기를 살아온 석학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제 심금을 울린[?] 대목은
정보화에 대한 와카이즈미 교수의 질문에 포함된 이 문구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이를테면 컴퓨터 시스템을 관리하는 소수의 지적 엘리트와 소외되는 다수의 단순 노동자간의 긴장감의 고조, 또는 전 국민의 배번제에 의한 사생활의 침해 등과 같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몇몇 측면입니다.
숫자 13개로 이루어진 모 일련번호를 떠올리게 만드네요.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거참....
삼사년 전부터 트랜드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와서 몇 권 정도 봤는데 우습게도 조금 괜찮다 싶은 것은 이미 유행이 되어버린 것이더라.
그냥 경제공황 관련하고 성장정책 얘기 다룬 대중서나 한 권씩 읽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