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덴의 용 - ![]() 칼 세이건 지음, 임지원 옮김/사이언스북스 낙관적 과학주의자가 말하는 지능의 과거·현재·미래 인간성에 대한 관점이, 동의 여부를 떠나서 자못 흥미롭다. |
처음에 이 책을 집어들면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도대체 칼 세이건이 이걸 왜 썼냐는 점이었습니다. 과학자가 과학교양서를 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이 생물학 교양서를 쓰는 것은 어딘지 쌩뚱맞은 느낌이 듭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살짝 이해가 가네요. 그는 자기 평생의 숙원이었던 '다른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에 대한 얘기를 더 하고싶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코스모스]가 "다른"과 "조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면 [에덴의 용]은 "지적"에 무게를 싣고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세이건 교수는 우주의 긴 역사와 인간의 짧고도 급격한 변화를 대조시키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뒤이어 유전자의 기능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생존을 위한 조건으로서 유전정보가 지닌 한계를 조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물체 외부의 정보를 기록하고 처리하는 기관인 뇌와 그 기능인 지능이 진화해왔음을 설명합니다. 이후 저자는 뇌와 지능의 작동원리에 대해 설명해나가며 한가지 명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간성의 본질은 지능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의 '지능'은 '영혼'이나 '이성' 등의 종교적 혹은 철학적 관념과 아무런 상관 없는, 뇌의 진화에 따라 획득된 신피질의 기능을 의미합니다.
과학자답다고 해야할까요? 이 책은 인간성에 대해 참으로 똑부러진 관점을 제시합니다 : 뇌의 진화와 지능의 발달. 관점이 너무나 확고해서 조금은 당혹스러울 정도입니다. 예컨대 낙태의 문제에 있어 칼 세이건이 내놓는 대안은 저를 꽤나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낙태의 가치판단에 대한 기준으로 "뇌전도상에서 신피질의 활동이 시작되는 시점"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을 다른 종에게도 적용하여 돌고래, 고래, 영장류 등 상당수준의 지능이 확인된 동물들도 보호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엔 인격이나 생명에 대한 옳고그름의 관점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기준은 '지능의 발달정도'라는 진화의 정도과 뇌라는 기관의 기능성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탈가치적인 판단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겠지만(왜 지능이 진화의 정도를 가늠할 절대기준이 되는지 따져볼 수 있겠죠) 기존의 형이상학적 가치가 배제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관점은 제게 여러모로 낯섭니다.
과학주의와 더불어 보이는 이 책의 또다른 성향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더 나아가 낙관적이기까지 한 관점입니다. 그는 뇌의 구조나 두개골의 용적을 고려할 때 더이상 뇌의 용적이 늘어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이를 극복할 방법의 하나로 뇌수술에 의한 지능의 개선을 얘기합니다. 이런 류의 얘기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오용가능성의 문제인데, 저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죠.
이는 악몽과 같은 전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전망이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실험을 금지시킬 명분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부가 병원을 통제하는 것에 반대할 근거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뇌에 그와 같은 전극을 이식하도록 방치하는 국민이라면 이미 전쟁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고 그러한 처지에 이르러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모든 종류의 기술 진보가 가져올 수 있는 악몽과 같은 전망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가능성을 헤아려 보고, 기술의 이용과 오용 가능성을 대중에게 교육시키고, 기관, 관료, 정부 차원에서 기술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칼 세이건, [에덴의 용], 사이언스 북스, 2006(1977). 249~250쪽.
그런데 저는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기가 영 힘이 드네요.
핵분열이 발견되었을 때,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게 폭탄이 되길 바라진 않았을 겁니다.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길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더라도, 대체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에 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지곤 하죠. 그 금기만 제대로 지켜져도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 되겠습니다만, 그게 어디 원하는 대로 착착 돌아가준답니까. 역사는 결국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시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을 터뜨렸습니다. 게다가 한번 선을 넘어버리면 그 이후로는 돌이킬 수가 없죠, 2차 대전이 끝나도 냉전이 끝나도, 원폭을 물릴 수는 없는 것처럼. [아시모프의 단편 중에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룬 물건을 본 기억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혹시 아시는 분?]
연구나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일지 몰라도 그것을 쓰는 사람은 중립적이지 못합니다. 우린 자연법칙의 몰가치성에는 동의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탐구하는 '과학'과 이를 현실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의 가치중립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 기술과 지식을 휘두를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컨대, 어린애가 날붙이에 손을 대려 할 때, 아이에게 도구의 위험성에 걸맞는 통제력을 기대해야 할까요, 일단 칼에서 손을 떼게 만들어야 할까요? 지식을 정말 "쓰기 나름"이라는 얘기로 무작정 확장시켜도 되는 것인지, 조금 회의가 듭니다. 이게 도서관 입구를 틀어막은 호르헤 수사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압니다만….
이러한 문제제기는 그의 과학주의적인 관점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앗아갈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정말 생명의 박탈여부를 신경계통의 진화정도라는 기준에 의해 정할 수 있는 것일까요? 비록 고무줄처럼 제멋대로이고 자기 입맛에 따라 남용되어 껍데기만 남았을 지언정, 생명의 '존엄'이라는 추상적 가치나 당위를 버리고서 과학적 발견과 이에 따른 기능적인 관점만으로 충분한 정도의 자기통제를 이룰 수 있을까요? 전 그걸 쉽게 긍정할 수가 없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세상에 추상적 당위를 강제하고자 한다면 어느 지점에선가는 그 근거가 시작되어야 하니 결국 도그마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쩌면 이게 식자들의 상당수가 종교에 귀의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신의 존재는 확실하게 진리의 출발점을 끊어주니까요. 허나 무신론자에겐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뇌와 진화에 대한 과학 교양서로서 상당히 읽을만한 책이었습니다. 어렵지 않게 얘기하면서 독자의 흥미를 요령있게 이끌어내는 필력이 대중지향의 책으로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 뇌과학인 만큼, 77년에 쓰여진 이 책은 정보의 신선도 면에서 아쉬움이 없을 수가 없네요. 메이저한 발견이나 변화에 대해서는 역자분이 주석으로 보충하고 있으므로 보는 데에 큰 무리는 없지만, 아무래도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된 책들과 정보의 질적인 면에서 비교하기는 힘들 겁니다. 여담이지만 컴퓨터 게임의 예시로 퐁(Pong)을 드는 것을 보며 빵 터졌습니다. 세월이란 정말 무섭군요.
하지만 칼 세이건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과학주의적인 관점은 아직 가치가 빛바래지 않았습니다. 근거가 풍부하고,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있으며, 굉장히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있고, (실은 이게 제일 중요한데) 손에 잡힐 만큼 충분히 얇습니다. 대중서로서 이보다 무얼 더 바랄까요. 과학주의적인 입장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 맛보기로 최적입니다. 물론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테고 저 역시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만,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는 면에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물의 지능에 대한 얘기는 여러모로 곱씹어보게 되더군요.







덧글
안단테 2009/05/23 00:47 # 삭제 답글
역시 과학의 오남용의 우려와 그에 대한 통제는 항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 말씀하시는 바에 공감하지만, 만약 그 어린아이가 클 때까지 칼의 용도와 위험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그걸 접하게 된다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낫 한 번 안 잡아 보다가 성묘할 때 처음 휘두르고는 멋지게 엄지손가락에 자해(?)를 한 경험이 있는지라 Noname 님의 예가 또 다른 면으로 다가오네요. 제한의 정도와는 별개로 전면적 통제만큼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더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는 저도 반대하며 제한을 하려면 사회적, 기술적 여건 등에 따라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근거를 가지고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여하튼 이 책도 한 번 눈여겨 봐야 겠군요. 갈수록 읽어도 읽어도 읽을 책이 늘어나는 것 같아 뭔가 행복한 고민입니다^^;;
Noname 2009/05/24 17:18 #
저도 지식의 억압을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걸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우리 문명이 성숙했는지 자꾸 의심이 들어서.....
지오-나디르 2009/05/23 01:36 # 답글
내 사상과 조낸 일치하는군. 과학에서 가치개입의 우선 배제.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뇌.
Noname 2009/05/24 17:19 #
....자네 기독교도 아니었어?
지오-나디르 2009/05/24 22:10 #
내가 종교를 믿는 이유는 딱 하나."인간은 불완전하다. 고로 뭔가 완전한 존재를 상정했을 때 그것은 우리를 설계한 지적설계자 신(神)이시다."
만일 인간이 전지전능하고 불로불사하는 존재가 된다면 신도 필요없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날이 올지는 회의적이다.
지오-나디르 2009/05/24 22:12 #
물론 인간과 지구라는 존재가 그냥 우발적으로 생겨났다고 믿는다면 이런 믿음도 필요없겠지만 말야.하지만 나는 이 불완전함에 매우 불만스럽거든.
Reality 2009/05/23 02:28 # 답글
서술하신 것에 따르면 저는 이 책의 입장에 더 가까운 편이로군요. 에덴의 용이라, 일단 읽어봐야겠습니다. 과학 관련 서적 읽은지가 꽤 오래 되서...
Noname 2009/05/24 17:19 #
한번 읽어보세요. 재미나게 읽힙니다. :)
zhun 2009/05/23 12:46 # 삭제 답글
사람이 소를 잡아먹을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고는 보이지 않음.그저 인간이 더 나은 지능으로 자연을 정복하였을 따름....
그렇다고 지능을 확장하자는 건 좀 위험한 주장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사실 '지능'이라는 개념 자체도 너무 추상적이라 집중적으로 계발하는게 가능하긴 한건지....
사실 지금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줘서 주의력 집중력 향상시키는 약이 개발중이라고는 하는데...
Noname 2009/05/24 17:22 #
나도 자연권이라든가 천부인권이라든가, 솔까말 Bull Shit이라고 본다.다만 그것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이를 대신할 가치체계가 필요하기야 할 거인데,
그것을 현재의 뇌과학과 진화론에서 찾는 것이... 정말 괜찮을지 걱정이 드는 것이 문제.
zhun 2009/05/25 00:37 # 삭제 답글
나는 진화론자라...원래 뇌는 유전자의 취사선택으로 진화된 것이겠지만
이미 이 발달된 두뇌의 힘으로 인해 인간은 유전자의 통제를 벗어나는 지위에 오르게 되지 않았나
(요즘 출산율 1.20명... 유전자가 부여한 자기증식의 임무를 초월한 두뇌의 힘이죠)
인간의 그런 지력이라면 뭔가 새로운 대체할 가치체계를 찾겠지요
현실적으로도 보면, 현재 종교의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국가가 종교의 역할도 일부 대신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국가교'라고 할까... 순국선열에 대한 예우와 국사교육으로 지탱되는...
공산국가에서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노동영웅도 만들고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하기도 하지만.
인간 역사가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알아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기 마련이라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