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생각의 지도 - 리처드 니스벳 by Noname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나의 점수 : ★★★

동서양의 차이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익숙한 담론이지만 가치가 다르다.


교보에서 날 잡아 반토막으로 팔길래 집어든 책입니다. 아마 그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전 이 물건을 볼 일이 없었을 겁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한 책이라니, 서양인들에게는 이게 신선한 화두일지 어쩔지 몰라도 동양에서는(특히 정체성 혼란이 심한 한국에서는) 넘쳐나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로 울궈먹는 얘기들 아닙니까. 책에서든 신문에서든 TV에서든 골백번 들었던 뻔한 소리를 아주 뇌 주름에 새기려고 굳이 책까지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별 기대없이 봤습니다만, 읽으면서 이 책에서 의외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전하는 내용이 굉장히 새롭거나 신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라는 것이 사실 특별히 새로운 얘기가 나올만한 소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이 책은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심리학적 실험결과를 통해 "실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 리처드 니스벳은 동서양의 특질들을 설명하면서 그에 맞춰 다양한 연구결과와 사례를 끊임없이 제시합니다. 텍스트에 대한 인문적인 성찰을 위주로 하던, 이 소재를 다루는 기존의 방식에 익숙한 제겐 이런 접근이 꽤나 고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동서양의 차이에 대한 기존의 인문학적 접근은, 주장 자체는 설득력이 있고 읽는 나 자신도 분명 그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있는 사실(Fact)이 아닌 하나의 관점(Point of View)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적 결과도 더러 틀릴 수는 있지만, 추정되는 "사실"과 그럴싸한 "주장"은 신뢰도가 확실히 다르지 않겠습니까. (구분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전 둘의 가치가 확실히 다르다고 봅니다.) 더구나 서구문명은 한계에 도달하였으니 이제는 동양에 주목할 때라며 별 시답잖은 소리들이 활개를 치고다니는 나라에 살다보니, 증명되지 않는 관점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집니다. 요즘엔 아예 "동양"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일단 눈에 의심의 필터를 장착하는 습관마저 들어버렸을 지경입니다.

이 책의 실증적인 태도는 세가지 면에서 뚜렷한 장점을 보입니다. 하나는 실험과 사례 등 주장을 뒷받침하는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는 점이고, 둘은 관찰되는 차이의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된다는 점이며, 마지막으로 애매한 담론이나 신비주의적인 관념으로 날아가지 않는 점입니다. 전 셋째가 특히 고무적이어보였습니다. 이 주제로 얘기를 풀면 꼭 차이에 대한 서술과 유익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못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니, 순환론적 세계관이니 운운하며 도를 믿으시라는 투의 얘기로 끝나죠. 아무래도 이런 담론은 서구적 관점에 대한 반발에서 나오는 면이 있으니, 반대급부로 동양적 가치를 역설하게 되는 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저처럼 "우리 관점"에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는 입장에서 그런 태도는 주장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공연한 소리에 불과하죠. (기가 맑아보인다며 들이대면 오히려 사이비 취급을 받게되는 것처럼)

우리네 입장에서 봤을 때 내용 자체가 크게 신선한 책은 아닙니다. 새로운 주장을 기대한다면 십중팔구 돈이 아까워질 물건입니다. 하지만 대중서 중에 동서양 담론를 다루면서 이렇게 유의미한 근거나 사례를 많이 제시하는 책은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거의 한 페이지에 하나 꼴로 실험결과나 사례가 튀어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니 통설이거나 말거나 굳이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괜찮은 독서가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이 책이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역자인 최인철 씨는 저자의 연구원으로서 이 책에 수록된 실험에 많이 참여한 만큼, 번역의 신뢰도나 질적인 측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분량도 많지도 않고, 서술도 난해하지 않으니 한번 가볍게 읽어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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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5/31 15:3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Noname 2009/05/31 16:01 #

    아... 그러고보니 책 서두에 인간 사고에 대한 보편주의적인 관점이 깨진 것에 대해 저자가 상당히 놀라워하는 대목이 있던데, 전 심리학에 대해서 문외한이니 실감이 잘 안 나지만, 만약 이제껏 심리학 연구에 있어 보편주의가 줄곧 대전제로 작용되어 왔다면, 저 책의 결과는 앞으로 새로운 발견을 위한 후속 연구로 계속해서 확장해나갈 수도 있겠군요.

    말씀하신 대로라면 참... 아까운 일이네요.
  • 피코 2009/05/31 16:55 # 답글

    서양인에게는 대단히 놀랍고도 가치가 있는 책이었으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양인인 우리에게는 뭐^^;그냥 굴러다니는 이야기지요.
    전 사실 책에 적혀있던 실험방법에서 많이 놀랐어요! 서양인들과의 사고방식의 차이점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면서도 재밌더라구요.
  • Noname 2009/06/01 17:25 #

    저도 동서양의 차이를 저런 방식으로 입증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 안단테 2009/05/31 22:19 # 삭제 답글

    저도 확실하게 사례를 제시해주는 주장이 좋기 때문에 흥미가 가네요.
    이 서적도 눈여겨 봐야 겠습니다~ 추천 감사드려요^^
    (근데 정말 우리나라는 서양문물 반발 내지 열등감으로 인해 말도 안 되는
    동양사상 옹호에 관련된 책이나 주장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아요;;;)
  • Noname 2009/06/01 17:25 #

    꽤 흥미로운 책입니다. 두께도 얇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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