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폭력의 세기 - 한나 아렌트 by Noname

폭력의 세기 - 2점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이후

폭력과 권력에 대한 흥미로운 화두를 담은 책.
그러나 번역이 엉망진창이니 말짱 꽝.


고백컨대, 저의 이 책 독해율은 40%를 밑돌고 있습니다(계산 기준같은 거 꼬치꼬치 캐묻진 맙시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제 얄팍한 해독력이나 교양의 결핍 등 주관적인 능력 부족의 문제도 있긴 할 겁니다만, 변명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하는 얘기인데, 내가 이 텍스트를 해독 못한 이유의 6할 이상은 책 자체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이 책의 번역상태에 있습니다. 아래의 대목을 한번 읽어보세요.

과거에 대한 이러한 기이한 충성에 있어서 더욱더 놀라운 것은 반란의 도덕적인 성격―이제는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그 맑스주의적 수사학과 충돌하는 정도에 대한 신좌파의 외관상 그럴듯해 보이는 부주의함이다. 사실상, 이 운동과 관련하여 이해관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없다. 페터 슈타인펠스 Peter Steinfels는 [공화국Commonweal](6월 26일, 1968)에 실린 '1968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주목할 만한 논설에서 다음과 같이 아주 올바르게 지적했다. "페기Peguy는, 소르본느의 현학적 대가大家들mandarinate에 대한 후기의 조롱 그리고 '사회 혁명은 도덕적일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신조로 볼 때, 문화 혁명의 최적의 후원자였을지도 모르겠다."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1999(1970), 이후. 49-50쪽.

적의 얼굴에서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는 것, 폭력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도 지배를 가능하게 해주는 적의 사악한 음모 및 조작을 폭로하는 것, 다시 말해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절멸의 위험조차 무릅쓰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것이 아직도 교정과 거리에서 오늘날의 폭력이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동기들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이러한 폭력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외양의 세계에서, 그 외양만을 취급하고 현시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위선의 독단―시간이 가면 탄로나는 편의적인 책략과 구별되는―은 이른바 합리적인 행위라고 불려지는 것과 병행될 수 없다.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1999(1970), 이후. 103-104쪽.

대명사 남발, 어색한 역어, 부자연스러운 문장구조, 삽입구와 쉼표 남용 등 소위 "번역체"라고 불리는 것이 지닌 악덕이란 악덕은 싸그리 모아 잡탕밥을 끓여놓은 책입니다. 차분히 파면 이해 못할 것까진 없지만, 저런 문장들로 160페이지가 채워져있다고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안 그래도 본문 안에서 풀어야 할 얘기를 보론이랍시고 책 말미로 돌려 25페이지나 늘어놓는 구성도 짜증나는데, 번역까지 이 상태면 도무지 읽어줄 수가 없습니다. 역자분이 뭐 독자 골탕먹이려고 번역을 이리 해놨겠습니까마는, 결과적으로 돈 주고 사서 골탕을 먹어버렸으니 내 아니 따질 수가 없군요.

한 문장 한 문장 골머리 썩이면 독해율을 42.75%까지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문장 상태로 보건대 그렇게 머리 쥐어짜서 해독한들 그게 저자의 원 의도인지 오역인지 내 알 게 뭡니까. 번역 상태가 안 좋은 책을 보며 흔히 농담삼아 "역서보다 원서가 읽기 쉽겠네"라고 말하곤 합니다만, 이 책은 진심으로, 영어로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막상 원어로 접하면 또 그게 아니겠지만, 여튼 이게 번역인지 암호인지 모를 활자들을 눈에 쑤셔넣고 나니 적잖이 골이 납디다.

번역에 대한 얘기는 이쯤 해두고, 책을 거의 반토막만 읽은 셈이라 얘기하기가 참 조심스럽지만, 여튼 던지는 화두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권력과 폭력이 서로 대립항이라는 얘기라든가, 폭력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말이죠. 한나 아렌트는 폭력이란 행동생물학자나 사회학자들의 생각처럼 동물적인 본성의 무분별한 노출이 아닌, 하나의 합리적이고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임차인과 집 주인의 일반적인 이해 갈등을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 계몽된 이해관게는 인간이 거주하기에 알맞은 건물인가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그러한 이해관계는, 높은 이윤에 대한 집 주인의 이기주의나 낮은 임대료에 대한 임차인의 이기주의와 아주 다르고, 대부분의 경우에 서로 상충된다. 필경 '계몽주의'의 대변인일 중재자의 통속적인 답변, 이를테면, 장기적으로 건물의 이익은 집주인과 이마인 모두의 진정한 이익이라는 답변은 시간 요인을 무시하고 있는데, 이 시간 요인은 관련되는 모든 요인 중에서 최고의 중요성을 갖는다.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해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그 자신은 죽거나 이사하거나 집을 판매한다.
…(중략)…
이와 같은 조건은, 필요한 변형을 가하면, 당연히 노사 갈등에 있어서도 사실이며 마찬가지이다. 이기주의는, '진정한' 이해 ―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이해와 구별되는 세계의 이해 ― 에 양보하라고 요구받을 때, 언제나, 가까운 것은 내 셔츠지만, 더 가까운 것은 내 피부이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이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지만, 아주 현실적이다.
…(중략)…
공적인 문제res publica, 공적인 것에 관해 아주 약간의 관념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해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비폭력적으로 행위하고 합리적으로 주장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이후, 1999(1970). 119-120쪽.

폭력은 합의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나오는 선택으로, 세상을 바꾸는 추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급진주의자들의 생각처럼 사회변혁을 위한 창조적인 에너지로 작동하기보다는 더욱 폭력적인 세계로 역행할 가능성이 큰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을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루는 합의로 보는 한나 아렌트에게 있어 폭력은 사회를 지배하는 힘이 소진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대립항이고, 이러한 것으로는 권력을 창출해낼 수가 없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이러한 폭력의 대두는 근대성의 신화와 진보에 대한 맹신이 붕괴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합니다(제가 읽은 것이 맞다면).

68혁명의 혼란이 구미세계를 훑고지나간 직후에 나와서 그런지, 이 책은 퍽 보수적인 관점에서 현대의 혼란상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을 야만이 아닌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물로 보지만, 그것이 새로이 권력을 창출해내기보다는 폭력을 정당화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할 것이라며 폭력에 의한 혁신의 가능성도 회의합니다. 폭력적인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특히 이 책은 전반부 3분의 1이 거의 68혁명의 모토들과 사르트르, 소렐 등 당대의 급진적인 사상을 비판하는 데에 할애되고 있는데, 68혁명이라면 꺼뻑 죽는 우리나라의 진보 지식인들은 한나 아렌트의 견해를 어떻게 여기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폭력적 수단과 권력 창출에 관하여 제법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특히 요 몇년 사이 사회갈등이 극화되어 혼란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사회를 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근데 번역이 이래서야 원…; 사실 한나 아렌트의 주장은 여기서 언급한 것보다 폭이 넓어서 좀 더 읽어봐야 하겠고, 몇몇 대목들은 흥미롭긴 해도 의아한 면이 있어서 나름대로 생각도 좀 해보고 싶은데, 문장의 문법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데만도 정신력이 과하게 소모되는지라 당췌 엄두가 나질 않네요. 솔직히 지금 제가 읽은 것이 제대로 뜻을 파악한 것인지도 확신이 안 섭니다. 부담스러워도 원서를 찾아야 하려나….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가능한 한 원어로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이 역서는 절대 비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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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printer 2009/06/09 13:21 # 답글

    저도 읽다가 집어 던진 일이 생각이 나는군요. 그렇지만 컨셉은 재미있었습니다. 확실히.
  • Noname 2009/06/10 08:58 #

    냅두기는 좀 아까운 책이더군요. 제대로 번역해서 다시 냈으면 좋겠습니다.
  • Gloridea 2009/06/09 14:35 # 삭제 답글

    용케 읽고계시는군요. 인용된 부분만 봐도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데;; 저는 번역이 너무 엉망이면 "살다가 정말 필요할 때가 오면 그 때 읽어도 늦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미련없이 던져버립니다. -_-;;
  • Noname 2009/06/10 09:00 #

    저도 보다가 번역 구리면 보통은 치워둡니다. 다만 이건 캠퍼스에서 30% 세일하며 팔길래 상태 살펴보지도 않고 충동적으로 지른 책이라, 안 읽고 치우자니 참을 수 없이 아까워서 결국 오기로 끝까지 읽어버렸습니다. -_-;;;
  • 위시 2009/06/09 19:34 # 답글

    이런 책들을 보면, 지식인의 책무 중 하나가 잘 다듬어진 번역을 통해 어려운 지식을 대중이 접근하기 쉽게 노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Noname 2009/06/10 09:01 #

    제대로 된 역자가 너무나 절실합니다... -_-;;;;
  • 위시 2009/06/11 00:16 #

    실제로 푸코 책 중에서도, 오생근 교수님 번역인 감시와 처벌은 매끄러운 번역이 더 매력적일 정돈데 지식의 고고학이던가? 다른 분 번역인 그 책은 대체 내가 한글을 읽는 것인지 코란을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더랍니다.

    어쩌면 이게 인문계 고사현상이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라고도 생각되네요. 죽여줍니다 정말.
  • BaronSamdi 2009/06/09 19:59 # 답글

    헐........저도 샀는데 ㅡㅡ;; 이해를 하지 못하고 직역한 거 같네요. 저도 번역을 하고 있던 터라 착잡합니다.
  • Noname 2009/06/10 09:06 #

    읽어볼 책으로 전부터 목록에 넣어둔 물건인데 번역이 이래버리니... 씁쓸합니다.
  • 안단테 2009/06/10 12:33 # 삭제 답글

    한나 아렌트 씨의 사상은 단편적으로만 접해온지라 언젠가 저도 제대로 잡아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좋은 번역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겠군요;;; 마인시커 전우회의 희생적인 활동에 감사를!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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