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 조지 리처 by Noname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전면개정판) - 10점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옮김/시유시

합리화의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서.
개념으로만 접하는 것과는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


외조부님 장례를 치르던 날, 화장터로 이동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 잠시 장례식장 1층 로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로비에는 화분 몇 개와 앉을만한 의자 몇 석 말고는 달리 뭐가 없었지만, 그 근처에 안내 팜플렛이 꽂혀있는 광고판이 있길래 잠시 서서 그 광고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시설,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 친절한 서비스 등 상투적인 광고문구를 훑어나가다가, 한 대목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기함을 토했습니다.

"장례 마일리지 서비스"

해당 장례식장의 프리미엄 회원으로 가입하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혜택이 쌓인다는 겁니다. 물론 장례란 단순히 사람을 잃는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내드리는 의식을 행하고 이후의 상황을 수습하는 지난한 과정과 부담스러운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엄연한 하나의 "현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격부담을 덜어준다는 제안은 퍽 솔깃하고 합리적인 얘기입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것은, 그래서 미리 장례식장에 "프리미엄 회원"으로 가입을 하는 것은, 그 "고객"의 입장에서는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합리화의 폐해"라는 말, 참 많이 듣습니다. 의무교육을 정상적으로 수료한 사람이라면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자주 들어본 얘기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직접 "합리화의 폐해"라는 것을 실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쓰레기 치우기도 모자라서 이젠 카드도 자기 손으로 직접 긁으라시는 모 패스트푸드 체인 코엑스점의 눈물나게 친절한 서비스 등 사소한 부분에서 기껏 그 편린이 읽힐 뿐입니다.

못 보고 지나치는 이유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러한 시스템이 이미 나에게 체화되어고 이를 수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탓일 겁니다. 우리는 흔히 사회의 합리화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고 착각하면서 삽니다. 어디서 말은 들어봤기 때문입니다 : "나 그거 알어. 나도 들어봤어." 하지만 완전히 체화되어 이질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개념만 들어봤다고 그걸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식의 기능은 이러한 점을 사람들에게 환기시켜 감각을 새로이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고객을 통제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는 그들로 하여금 돈을 빨리 쓰고 빨리 떠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 이용객을 위해 테이블을 빨리 비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중략) ……
일부 패스트푸드점은 고객이 식당에 머무는 시간을 20분으로 제한한다는 메모를 붙여놓기까지 한다. 대체로 패스트푸드점의 구조는 고객이 먹으면서 미적거릴 필요도, 그러고 싶지도 않게 되어 있다. 음식을 손으로 먹게 되어 있어서 식사에 필요한 시간이 짧아졌다. 고객이 20분 이상 앉아 있기에는 불편한 의자를 개발한 패스트푸드점들도 있다. 이것은 패스트푸드점 실내장식에 사용한 색상효과에 비길 만하다. "색상 선택의 요점은 긴장완화가 아니라 고객을 빨리 내쫓는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색상을 조심스럽게 선택한다. 로고의 주황색과 노란색부터 유니폼의 적갈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어긋난다. 이러한 색상은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하려고 동원된 것이다."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뉴 센추리판, 시유시, 2003(2000), 205~206쪽

조지 리처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는 산업을 넘어서 사회 전반이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자동화하는 것을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맥도날드화의 특징으로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성을 꼽으며 각 특징별로 두드러지는 현상들을 진단한 뒤에, 이러한 특징이 가져오는 폐해를 항목별로 진단합니다. 구성이 상당히 깔끔명쾌합니다. 게다가 이 구성에 맞춰서 제시하는 자료들도 양에서든 소스의 다양성에서든 충분하리만치 풍부하고요.

맥도날드화는 건강에 좀더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레지나 슈램블링(Regina Schrambling)은 여러 질병들, 특히 살모넬라의 발생을 식품생산의 합리화와 연관시키고 있다.
쇠고기(beef)가 '네 철자로 이루어진 단어' (four-letter word: shit 등과 같이 추잡하고 혐오스러운 뜻을 가진, 철자가 네 개인 단어-옮긴이) 취급을 받게 되자 미국인들은 매일 저녁식탁에 닭고기를 올렸다. 그러자마자 살모넬라가 양계업계에 번져나갔다. 닭을 기르는 일은 자동차 생산과는 다르다. 수요가 늘어난다고 생산라인의 속도를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닭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뭔가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 그것은 안전이었다. 많은 수를 빠른 속도로 튀김통 크기로 키우고, 도살하고, 내장을 빼내고, 털을 뽑다보니 닭은 슈퍼마켓에서 가장 청결한 식품이 되기는 힘든 것이다.
슈램블링은 또한 살모넬라의 번식이 달걀, 과일, 채소의 합리화된 생산과도 연관이 있음을 밝혔다. 식품생산업자들은 맥도날드와 버거킹에 쇠고기를 공급해온 육류가공회서 허드슨 푸드(Hudson Food)의 냉동 햄버거에서 대장균이 발견되는 바람에 얼마 전에 폐업을 하게 된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뉴 센추리판, 시유시, 2003(2000), 238쪽

미국의 축산업 및 식품제조업의 위생 문제는 유래가 깊죠. 위에서 언급된 97년 허드슨 푸드의 리콜사태 뿐만 아니라 2002년 Pilgrim's Pride의 리스테리아 균 감염사태나 2007년 Topps Meat의 O-157 감염에 따른 리콜 등 대형사고가 보통 많이 일어난 게 아닙니다. 제 경우, 93년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 Jack in The Box의 O-157 감염 사태로 세간이 발칵 뒤집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도한지라 미국식 대량생산 체제의 식품 안전성에 대해 삐딱한 눈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위생문제도 아니고 사람이 대여섯 명씩 죽어나가는 사고가 수년 간격으로 발생하는지라….

+α 그래서 저는 광우병 소동이 왜곡과장이 심했다고 보면서도 조갑제를 비롯한 수구 이빨들이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미국 쇠고기를 모함했다" 운운할 때마다 코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어딜 봐서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건지, 원.

질을 최소화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성향은 KFC의 설립자 할랜드 샌더스(Harland Sanders) 대령의 슬픈 사연이 잘 보여준다. 그의 아내가 손수 버무리고 포장해 실어보낸 조리기술과 양념비법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1960년에 400여 개에 달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두게 되었다. 샌더스는 음식의 질, 특히 육즙에 심혈을 기울였다. "샌더스 자신에게 요리예술의 최고 요소는 그가 오랜 시간과 인내를 통해서 얻은 향료식물과 양념을 섞어 만든 육즙이었다. 그의 야망은 육즙의 양념이 너무도 훌륭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 육즙만 먹고 '그 빌어먹을 닭고기'는 버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1964년에 사업체를 처분한 이후, 샌더스는 KFC의 호객꾼이자 심벌로 전락했다. 새로운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관심사가 질이 아니라 속도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대령의 육즙이 환상적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그 육즙은 만드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너무 비쌌다. 바뀌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패스트푸드가 아니었다." 샌더스 대령과 친분이 있던 레이 크록은 그가 한 말을 기억한다. "그 망할 놈들…바로 그놈들이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을 모두 망쳐놓았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내 육즙을 그 망할 자식들이 멋대로 줄였다, 늘였다, 물을 들이부었다 했지. 정말 미칠 노릇이라고."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뉴 센추리판, 시유시, 2003(2000), 131쪽

저자는 구체적인 설명과 다양한 증례로 합리화의 폐해를 피상적인 개념이 아닌 "맥도날드화"라는 하나의 실재하는 현상으로 그려냅니다. 그리고 이 "합리성의 철창"(Iron cage of rationality. 역자는 이걸 "합리성의 쇠감옥"으로 번역했던데,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어감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저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탈맥도날드화를 강력히 주장하는데, 그가 문제삼는 지점들은 많은 면에서 타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동조가 안 되는 대목도 제법 많았지만, 그런 경우도 동의 여부를 떠나 한번쯤 문제의식을 가져봄직한 현상이고요.

사실 전 맥도날드화에 맞서 우리가 지켜야하는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관념이 굉장히 희박한지라, 저자의 문제의식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굳이 적극 저지되고 지양되어야하는 일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식당에서 종업원이나 주인과 쓸데없이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싶지도 않고, 사회의 합리화가 가져다주는 예측가능성을 아주 편안하게 여깁니다. 캠프는 안전한 캠핑장에서 시간이나 때우면 족하지 굳이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특수성도 한 몫을 합니다. 이미 자기 손으로 전통은 다 내다버렸고 풍경은 다 갈아엎었는데, 맥도날드가 들어서서 새삼 망가질 스페인 광장이 어디에 있으며 잃어버릴 전통이 또 뭐가 있답니까.

하지만 세계가 겪고있는 현대적인 변화들을 살펴보려는 노력은, 맥도날드화에 대한 찬반입장 어느 쪽에든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책의 초판 발간이 1993년이니 "맥도날드화"는 올해로 세상에 나온지 16년이 되는 개념입니다. 그 사이 합리성의 폐해에 대한 관념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이 책이 지적하는 문제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뻔한 얘기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회의 맥도날드화는 현재진행형의 상황이며, 그럼에도 대개는 이것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할 뿐 실감하지 못하면서 삽니다. 저처럼 이미 맥도날드화가 진척된 세계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더 그러겠죠. 맥도날드화에 적극 저항하지 않더라도, 현대사회의 일면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모색함에 있어 맥도날드화에 대한 이해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는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구체적인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맥도날드화"라는 개념 자체가 새롭게 느껴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베리아 반도의 친숙한 느낌이 든다고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족할 것 같으면 모든 책은 5페이지 이내의 다이제스트만 봐도 충분하겠죠. 조지 리처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는 사회 전부문의 형식합리화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실제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여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지 않으면서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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