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원빈,진구 / 봉준호
나의 점수 : ★★★★
자식 놈이 웬수다.
모정의 그로테스크함에 대한 소묘.
- 스포일에 대한 배려 없이 씁니다.
모정이라는 것에는 흔히 바람직하고 따스한 이미지가 덧씌워지곤 합니다만, 조금만 속을 들춰보면 그 안에는 기괴함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식은 웬수"라는 말도 있고 "전생의 원수가 현생에서 자식으로 난다"고 하는 한편, 그런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게 되고 심지어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것이 어머니라는 존재입니다. 고통과 희생 없이 모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으로 점철된 감정의 덩어리가 동시에 따뜻한 것이 됩니다. 모정은 이 극단의 정서가 한몸으로 융합된 것이고, 그래서 때로는 광기에 가까워집니다. 자식을 위한 희생과 자식을 죽이는 동반자살을 동시에 설명하며, 살인을 하게 만드는 한편 그 고통을 잊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죠.
반면에 그 헌신적인 사랑의 대상인 자식에게 있어 어머니는 우선순위에 놓이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생의 대상이라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군요. 원빈이 연기하는 자식 도준이는 그 모습을 원색적으로 드러냅니다. 도준은 극중 저능아로 설정되어있지만 어머니를 향한 도준의 태도는 "어리숙함"이라기보다는 "철없음"에 가깝습니다. 어머니를 대하는 도준의 행태는 흡사 부모를 업수이 여기는 반항기의 청소년처럼 묘사됩니다. 도준이의 저능아 설정은 자식이 부모를 대함에 있어 부가되는 "예의"나 "도덕" 등의 장식을 벗겨내어 모정의 "일방적인 희생"이 개념필수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부모자식간의 본질적인 기생관계를 여과없이 노출시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 장치를 거쳐 우리 앞에 노출된 "자식"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어리석고 이기적이면서 순진한 척 잔인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자식의 무결을 주장하기 위해 절박하게 뛰어다닌 어머니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대를 배반하는 현실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현실을 말소하는 것을 택합니다. 이건 처음부터 정해진 결론입니다. 영화는 건성건성인 수사과정이나 마을에 떠도는 소문을 던지는 한편, 어머니에게 진범을 추격하는 탐정 노릇을 시키면서 의심이 합리적인 것처럼 관객들을 속입니다. 하지만 그건 의심을 억지로 납득시키기 위한 사후정당화일 뿐입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도준이의 무죄를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었고, 루즈와 혈흔도 구별을 못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죠. 영화 [마더]는 내용 전체가 추리를 가장한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만적인 '의사추리극'이 깨지면서 어머니의 모정은 새삼 그 광기를 드러냅니다.
더욱 선뜩한 것은 이 영화의 자식이 모정의 광기를 이용해 어머니를 공범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어머니가 자기 아들 대신 잡혀들어간 청년을 만나 너도 어머니가 있느냐고 물으며 오열하는 대목에서, 모정은 기괴함을 넘어 하나의 비극이 됩니다. 그리고 도준이 화재현장에서 침술통을 찾아 어머니에게 건넴으로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광적인 헌신과 이에 기생하는 자식의 관계는 부모-자식의 운명공동체라는 끔찍한 형태로 완성됩니다. 이 장면때문에 더러 도준이가 실은 바보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전 그보다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내포한 비극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독한 영화입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봉준호 감독의 센스는 여전히 발군입니다. 김혜자 씨의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고, 원빈도 연기가 좋아서 좀 의외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원빈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요상한 발음과 어색한 표정이 전부였거든요. 이야기 면에서도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다만 줄거리의 디테일이 많이 뭉개진 것이 아쉽습니다. 농약 박카스 얘기라든가 살해된 여고생 얘기 등이 풀리다 만 실타래처럼 뒤끝으로 남네요. 아마 전자는 김혜자의 "어머니"를 특수화시킬 위험이 있고, 후자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어머니 중심의 관점에서 다소 일탈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만, 그래도 이야기가 사이사이 빈틈이 많다는 느낌이 들어서 돌아서는 기분이 개운치 않습니다.
이런 소소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보는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으며 여운까지 확실히 남기는 것이 퍽 마음에 드는 영화였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본 영화들 중에서는 가장 좋았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평균 이상의 수작을 보는 것 자체가 참 오랜만이긴 하지만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들이 [인디아나 존스4]에 [헬보이2]에 [트와일라잇]의 병맛 대행진이었으니 말 다했죠, 뭐. 그나저나 [인디아나 존스4]나 [트와일라잇]의 병맛은 사람들이 대부분 동의를 하더랍니다만, 평가들 듣다보니 [헬보이2]는 괜찮다는 이들이 많아서 좀 의외였습니다. 내가 속이 꼬여서 그런 건지, 원….





덧글
Reality 2009/06/23 11:37 # 답글
저는 농약 박카스도 그렇고 그 사진 찢는 장면 때문에 영화가 너무 어렵더군요.보면서 참 이상한 게 이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섹슈얼한 삘을 너무 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망할 정도로...
그래서 이런 질문이 계속 떠오르네요. 과연 도준이는 친아들인가? 하는...
Noname 2009/06/24 14:52 #
저도 그래서 많이 아리까리 했습니다.하지만 고민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