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by Noname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나의 점수 : ★★★★

진화에 대한 피상적인 느낌을 일소하는 책.
논쟁적인 주장만큼 설득력도 강하다.



줄곧 이름만 주워듣다가 이제야 읽게 됐습니다. 제목과 표지의 광고카피 정도만 들었을 때에는 막연히 사회적 다위니즘과 비슷한 수준의 얄팍한 적자생존의 법칙을 떠올렸는데, 이야, 이거 상상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네요. 제목에 막연히 낚였는데 포인트가 "이기적"에 있는 줄 알았더니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내용의 방점은 오히려 "유전자" 쪽에 찍혀있었습니다(나중에 머리말을 보니 저자 본인도 그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그간 진화론에 대해(사실 생물학 전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기에 진화론이라고 해봐야 막연히 피터지게 싸워서 이기는 놈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는 수준의 피상적인 인식밖에 없었고, 돌연변이→적자생존이라는 흐름도 전언게임에서 귀 틀어막고 얘기 전달하면서 문장이 다르게 바뀌는 것 정도의 흐리멍덩한 수준에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막연한 수준의 이해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은, 도대체 적자생존은 왜 하고 생명은 왜 연속되어야 하느냐는 점이었습니다. 특정 환경 하에서 그에 적합한 개체가 오래 남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생물은 어쩌다 이렇게 복잡한 메커니즘을 습득해가면서까지 "오래 남으려는" 경향을 갖게 됐는지 모르겠더란 말이죠.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여기에 대해 하나의 깔끔한 설명을 줍니다. 이 책은 진화의 층위를 개별 종이나 개체에서 유전자의 차원으로 내리면서 얘기를 시작합니다. 진화는 개체간의 갈등이 아니라 개체에게 특정한 형질을 발현시키는 유전물질 사이의 적합성 경쟁이며, 환경에 적합한 분자는 오래 남아 후세로 이어지고 적합하지 않은 분자는 사라집니다. 이러한 경쟁의 동인은 그 물질에 존재하는 자가복제성입니다. 어떤 분자에 자기자신을 복제하는 성향이 있다는 단순히 물리적인 사실 하나가, 적합한 분자는 흥하고 부적합한 분자는 쇠퇴하고, 그렇게 안정상태가 오면 거기에 또 변이가 생기면서 다시 경쟁을 하길 반복하면서, 생명의 발생과 진화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진화론에 대한 오랜 의문인 "어떻게 하나의 물질이 그렇게 복잡한 기관으로까지 발전했는가"에 대해서도 설득력있는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화란 이중나선의 물질들이 하나의 단일체로서 발전·성장해온 이력이 아니라 개개의 자기복제자들이 서로 결합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 선택 및 도태되면서 환경에 적응해온 과정이라는 것이죠. 관점을 개체에서 유전자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얘기가 달라질 수가 있다는 데에 놀랐습니다.

생명의 발생에서부터 시작해 진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냥 한큐에 설명해버리는 이 담대함이란. 솔직히 고백컨대 읽으면서 살짝 감탄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예시도 부모자식의 관계나 암수관계, 최적의 생존전략 등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했지만, 처음 수 챕터가 전하는 생명에 대한 과학주의적인 관점과 이에 기반한 명료한 설명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자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논증이 미흡해보이는 대목도 있지만 크게 흠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다분히 논쟁적인 주장을 던지고 있지만 그에 미흡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설득력있는 얘기를 전하고 있는 책입니다. 명불허전이로군요.

그러나 전 이 책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어도 별 다섯을 차마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래의 글 때문입니다.

도킨스와 하우스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 김우재

터놓고 밝히건대 전 김우재 씨의 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김우재 씨는 자기 관점이 확고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도 나름대로 갖추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가 최근에 썼던 일련의 쿨게이에 대한 글들(1, 2)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이, 비판을 하면서 비판하는 대상 자체를 관찰하여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범주화를 한 다음에(위의 예에서는 "쿨게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상의 "이미지"를 공격하거든요(게다가 그 이미지들도 편견이 많이 녹아있고). 이래서야 아무리 조리있게 말해봤자 폐쇄적인 자기완결성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의 평소 글에 별로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김우재 씨의 평가에 대해서만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생물학은 김우재 씨의 전문분야이고, 저로서는 그 분야에 독자적으로 접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나온지 30년이 넘었다는 사실도 문제입니다. 도킨스 씨야 바꿀 것이 거의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그건 본인이 이 책의 저자니까 그런 거죠. 더구나 인문학과 달리 과학은 내용이 틀리면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둘째치고 일단 지식으로서는 아웃 아닙니까. 더더욱 큰 문제는, 위의 김우재 씨의 글을 읽어도 도킨스의 논리가 정확히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 골치 아파.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azuremaya.egloos.com/tb/4997111 [도움말]

덧글

  • 漁夫 2009/06/30 18:04 # 답글

    '도킨스와 하우스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셔도 상관없습니다. ^^;;
  • Noname 2009/07/01 10:27 #

    음... 도킨스의 이론에 큰 문제는 없는 것인가요?
  • 漁夫 2009/07/01 10:48 #

    prion이 실제 현재 DNA의 방식과 다르게 유전 물질로 작동할 수 있다고 해도 가능한 것의 극히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며, 그런 경우에도 '복제자'의 정의에 부합합니다.
    저는 올려 놓으신 version이 아니라 전에 동아출판사에서 나왔던 초판을 봤기 때문에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30년이 지나는 동안 설명하기 위해 든 구체적인 사례(e.g. '체스 두는 컴퓨터가 아마추어 고수 수준은 됐다'는 등의 언급. 지금은 Deep Blue가 카스파로프를 격파하기도 했으니 세계 최고 수준이 됐습니다) 또는 성(性)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불분명하게 말한 부분 등을 좀 손봐야 하겠지만, 이 외의 모든 부분은 지금까지도 타당합니다.
    단 11장 'meme'은 약간 확신을 못 하겠습니다. ^^;; 하지만, 제가 아는 한 "meme은 말도 안 된다"는 소리는 그리 나오지 않은 듯합니다 ^^ 이에 대해 진지하게 책을 쓴 사람도 있다고 압니다.
  • Noname 2009/07/01 10:56 #

    그렇군요. 정보 감사드립니다. :)

    밈의 경우는 뭐랄까, 읽으면서 과학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진화이론에 기반한 사변과 같다는 느낌을 자꾸 받았습니다.
    연구를 한다손 치더라도 인류학이나 문화철학의 영역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 2009/06/30 22:2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Noname 2009/07/01 10:02 #

    ...자기 폐쇄적인 완결성에 이제는 자아도취까지 겹쳤군요;;
    하는 말만 조리있을 뿐이지 어딘가의 무도인과 동일한 타입으로 보입니다.
  • zhun 2009/06/30 23:42 # 삭제 답글

    읽으셨고만... 나는 이 책 덕분에 철저한 진화론자가 되었다네 -_-
  • Noname 2009/07/01 10:27 #

    ㅇㅇ. 왜 진작 안 봤을까 싶어지더라.
덧글 입력 영역


애드센스


애드센스 검색

맞춤검색

애드센스 - 타워형

너에게 희망이 되어줄께

백투더소스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