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1) - 후시미 츠카사 by Noname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1
후시미 츠카사 지음, 유정한 옮김, 칸자키 히로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나의 점수 : ★★

오타쿠들을 위한 변명.
살짝 민망하지만 이 정도라면 OK.


요즘 오덕계의 화제작(...인가?)이라길래 읽었습니다.
읽다보니 몇 페이지 안 지나 견적 나오더군요 : 오타쿠 변호물.
잘 나가지만 재수없는 내 동생, 알고봤더니 오타쿠? ← 대충 이런 내용.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물건 하나 : [노기자카 하루카의 비밀]

[노기자카 하루카의 비밀]은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어떤 학교에 용모수려에 공부잘하고 집안의 재력도 빵빵하고 성격도 좋은 여신같은 아가씨가 하나 있는데 알고봤더니 그녀는 오덕.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평범남 주인공은 그 비밀을 지켜주다가 둘이 얼레리 꼴레리 된다는 얘기입니다. 아, 줄거리 두줄 요약만 하는데도 트라우마가 되살아납니다. 읽으면서 민망함에 치를 떨었거든요. 이게 가만 생각해보면 만능 미소녀 오타쿠에게 평범한 일반인 주인공이 오타쿠인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위로하는 소설을 평범한 오타쿠가 읽고 있는 셈인데, 세상에 자위도 뭐 이런 식의 자위가 다 있습니까?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도 이 구도를 동일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용모 수려해, 공부 잘해, 옷 입는 것도 세련되었어,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여동생이 알고보니 오덕. 어쩌다 그걸 알게 된 평범한 오빠는 동생에게 휘둘리다가 결국 동생의 취미를 감싸주게 됩니다. [노기자카 하루카의 비밀]에 츤데레 구도를 얹어놓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동생이라는 아이템을 같이 토핑한 이야기입니다(물론 아이템 자체에도 노림수가 있지만요). 심지어 해결법도 똑같습니다. 오덕이 아니라면 어이가 없고 오덕이면 보고있기 민망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얘기입니다.

그래도 이 책은 의외로 그리 심하게 거북하진 않았습니다. 동생의 캐릭터가 하루카에 비해 "비교적" 현실적이고 일방적인 미화가 덜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갈등이 디테일한 것이 장점입니다. 막연히 안 좋은 시선 때문에 숨긴다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덕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이미지나 부모님의 반대, 성인물에 대한 터부 등 문제가 생기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수집품을 방 어딘가에 몰래 숨겨놓는 대응은 뻔하리만치 사실적이고, 그게 들켜서 부모님과 갈등을 맺는 전개 등 지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오덕 특유의 취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독선적인 태도 등도 잊지않고 내보입니다. 또한 문제를 디테일하게 드러내는 것 만큼이나 주인공 오빠가 동생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도 구체적으로 서술됩니다. 덕분에 마냥 터무니한 느낌 없이 무난하게 읽을 수가 있었네요.

그렇다고 아주 무난했던 것은 아닙니다. 전 나이롱 오덕이어서 그런지 오덕 취미에 대한 동생의 집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 쉽게쉽게 끊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오덕질이 무슨 자신의 정체성 씩이나 되는 걸까요? 현실적인 갈등 때문에 솔깃해지다가도 이 온도차 탓에 동조가 잘 안 됩니다. 주인공 오빠가 동생을 열성적으로 감싸주는 이유도,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나오긴 하지만 여전히 공감이 잘 안 갑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내가 공감하기 전에 극중 인물들의 감정이 먼저 한발짝씩 앞서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이야기가 확 와닿질 않아요.

게다가 동생이 만능이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허황된 모에요소로 점철된 하루카보다야 낫지만, 동생의 캐릭터는 아무리 봐도 변명에 특화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보아하니 오덕이어도 할 건 다 한다고 웅변하고 싶은 듯 한데, 이건 일종의 문제회피 아닌가요? 예컨대 야겜 문제의 경우, 작중에서야 만능 여동생이 야겜을 하니까 그게 특이한 캐릭터가 되지,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가 않죠. 여중생이 애니 DVD도 죄 자기가 돈 벌어서 사고 있고, 아버지와의 갈등도 동생의 유능함으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이건 흡사 여자가 집안 내팽개치고 일하러 나돈다는 비난에 맞서 여성의 당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수퍼맘"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오덕은 나쁘지 않다"인데 "이렇게 잘나도 오덕이라고 깔 테냐?"라고 나오면 해결이 안 되지 않습니까.

+α 안타깝게도 현실의 오타쿠 방어론은 거의 이쪽 과입니다 : "난 내가 돈 벌어서 오덕질한다. 불만 있냐?". 그럼 용돈 타는 사람은 오덕질 하면 안되나요? 어차피 노래방을 가든 당구를 치든 군것질을 하든 자기 알아서 쓰라고 준 돈인데. 돈 없으면서 낭비한다면 그건 오덕질이거나 말거나 무조건 잘못된 행동일 테고요. 문제는 오덕질이 나쁜 짓이 아니라는 사실이지 오덕이면서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사실 이렇게 따지는 것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라이트노벨은 오락을 최우선으로 하는 장르이니 어떻게하면 오타쿠들을 변호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재미있고 끌리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이 옳죠. 그리고 캐릭터는 매력적인 편이 엔터테인먼트엔 좋을 테고요. 그런 면에서 적당히 얘기 잘 끌어나가고 적당히 유쾌하니, 오락물로서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타 라노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캐릭터 과장이 적으니(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재떨이는 솔직히 당혹스러운 수준.) 이야기를 조금 깊이 나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쨌든, 크게 거북한 점 없이 무난하게 잘 봤습니다. 첫인상에 비하면 의외로 괜찮은 물건이네요.


P.S. 그나저나 남매들끼리 정말 그렇게 으르렁대면서 사나요? 남매에 대한 얘기들 들어보면 다들 그렇게 신경 곤두세우며 산다는데, 저도 여동생이 있긴 하지만 엄청 다정하진 않아도 서로 적대하면서 살진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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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오린123 2009/07/01 15:22 # 삭제 답글

    아무래도 여자와 남자 차이가 있다보니. 같이 살기엔 애로사항이 많을 수 밖에요. 남자와 여자는 욕망의 종류자체가 다릅니다. 서로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느니 서로 으르렁대며 사는게 더 편할 때가 많지요.
    그래도 그 차이를 좁히면 남매만큼 우애를 잘 보여주는 관계도 없습니다. 비올 때 바쁜 와중에도 우산 같이 쓰기 위해 기다리며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게 귀가하는 가족 관계. 이건 오로지 남매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이런 우애깊은 남매도 꽤 있고. 직접 목격하면 마음이 따스해지지요. 지옥불로 데워져서 말이죠.

    작품 자체는 나름대로 깊이있게 하려했는데 초고 나왔을 때 타협한 느낌?
  • Noname 2009/07/02 14:32 #

    연인처럼 다정하게 귀가하는 남매라니... 생각만 해도 닭살이 돋는 것을 보면 전 아직 멀었나봅니다. :)
  • Sengoku 2009/07/01 16:19 # 답글

    이 작품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애니화가 될 것 같네요... 아니면, 다른 것이라든가... 피규어라든지, 캐릭터 상품으로도... 일본이니까, 뭐든 할 것 같다는 생각이...
  • Noname 2009/07/02 14:39 #

    애니화가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믹스화는 이미 되었다고 하더군요.
  • Niveus 2009/07/01 16:28 # 답글

    ...제 여동생에게 전 벌레보다 조금 위 정도인듯합니다... ( -_)v-~
  • Noname 2009/07/02 14:39 #

    ...그렇게 안 좋군요;;;
  • 소우현 2009/07/02 02:05 # 답글

    헤에.. 의외네요. 저희 집 같은 경우엔 남매인데, 보는 만화도 같고 라이트노벨도 같이 보기 때문에(한가지 어긋난거라면 남동생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조금 좋아하지만 저는 경멸하는 쪽이죠..) 문제는 없다못해 둘이 합의하에 책들을 사제끼는 바람에 책장에 만화책과 라이트노벨이 꽉차서 어머니께 혼나는 경우도 있는데.. () 지금은 제가 서울에 와서 살기 때문에 제가 먼저 책을 사서 읽고, 제가 본가에 내려갈 일이 있다던가 부모님이 가끔 서울에 오실때 동생에게 갖다주라고 부탁을 하면 남동생이 또 열심히 읽고 둘이서 같이 네이트온으로 수다를 떨고.. 이런 식입니다. 이제 보니 굉장히 오덕스럽네요... (우울) 하여간, 본가의 책장은 여전히 채워지고 있어요.. ㅇ<-<

    그런데, 생각해보면 1년이었나 2년 전만해도 서로 죽이겠다고 식칼을 휘둘렀었어요. 살다보면 다 바뀌는 것 같네요. (다른집 남매들은 식칼은 휘두르지 않겠지만ㅎㅎ)
  • Noname 2009/07/02 14:40 #

    역시 공통의 접점을 찾는 일이 중요한 것 같군요.
  • Niveus 2009/07/02 15:10 #

    한 10년도 더 전엔 식칼이 날아오긴 했군요(...)
    저희집이 이상하게 과격한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닌가봅니다 -_-;;;
    요샌 그래도 서로 무시하고 지낼정도까지는 좋아졌습니다. (이게 좋아진거라니!!! ㅠ.ㅠ)
  • boPoisoner 2009/07/03 00:02 # 삭제 답글

    미라지에서 마야님 리뷰를 보니 소설의 동생이 덕질의 정체성이니 뭐니 해서 소설 좀 끼작대 봤습니다.
    제가 보고 나니 음? 이정도 덕질로 정체성이 어쩌구 한단 말인가? 너무 약한데?
    란 느낌이었습니다. 요는, 작주의 캐릭터는 덕질을 더 심도있게 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 Noname 2009/07/04 14:42 #

    너무 깊어지면 또 공감을 사기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라노베의 입장에선.
  • 지오-나디르 2009/07/03 10:58 # 답글

    대원보다는 용자 학산 찬양... 아 그게 그놈인가.
  • Noname 2009/07/04 14:41 #

    대원은 쿠메타 코우지 물건들을 우리나라에 정발한 시점에서 이미 종신용자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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