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요즘 버라이어티 쇼는... by Noname

출연자들이 자기네 지난 주 방송을 보면서 포털 검색순위를 모니터하는군요.

케이블 통해 본 일밤의 [오빠밴드] 재방송이 마음에 들어서 어제 방영했던 3회는 본방을 챙겼는데, 멤버들이 자기네 방송의 2회를 보면서 앉은 자리에서 네이버 검색어 순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정규 코너로 편성됐다며 자축을 하거나 시청률 20% 부탁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러려니 했는데, 자기네 방송을 스스로 모니터하는 장면은 참 생경했습니다. 출연자들이 방송을 녹화하고, 그 방송을 자신들이 다시 보며 반응을 살피는 모습을 그 방송을 통해 보다니….

언제부턴가 버라이어티 쇼는 카메라세트 밖으로 돌려 메타적인 관점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쇼를 위해 준비한 장치가 잘못되어 허둥대는 제작진이나 출연자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PD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습니다. 다만 이 메타적인 장치들은 기존 매체에서와는 달리 프로그램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구성을 감추는 역할을 합니다. [1박2일]에서 나영석 PD가 카메라에 잡힐 때, 사람들은 새삼 이게 쇼라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 앞의 쇼에서 현장감을 느끼고 그 뒷편에 준비되어 있을 대본의 존재를 잊습니다.

[오빠밴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방송을 하고있다. 잘 나가야 한다. 그러니 응원 좀 해줘."라며 정면으로 들이밀고 있습니다. 일밤이 다른 프로그램에 밀려 4개월째 시청률이 안 나왔다는 얘기까지 떠들 정도니 뭐…. 다른 버라이어티가 포커 페이스라면 이 쇼는 블러핑에 가깝더군요. 헌데 그러면서도 막상 프로그램의 내용 자체는 김정모가 막내니까 청소를 도맡는다든가 MT에서 요란떨며 노는 모습 등 여느 버라이어티와 마찬가지로 '설정'된 내용들이 그득하니,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쇼 프로그램의 '설정'을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눈에 뻔히 보이는 설정과 메타적인 리얼리티가, 도저히 하나로 융합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요소가 아무렇지도 않게 비벼져있는 것이 저에겐 너무나 낯섭니다.

문득 [패밀리가 떴다]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몇 회였나, 출연진들이 숨바꼭질을 하는데 유재석이 자신은 숨바꼭질을 잘 한다면서 카메라 감독과 자리를 바꿉니다. 그러면서 촬영 스태프가 화면에 잡히는데 그게 열명도 더 넘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죠. 매 회 시작할 때마다 방문한 시골집의 모습을 크레인으로 고공촬영을 하고 야밤에 찍어도 조명이 어디 빠지는 구석 없이 집 전체를 균일하게 비추고 있는데, 그게 어디 서너 명으로 될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를 일종의 시트콤으로 여기고 있던 저도 그 장면에서는 살짝 놀랐습니다. 그 동안 저 "패밀리"는 열 명도 더 넘는 스태프와 저 숱한 장비들 앞에서 요리를 하고 저녁을 먹고 "친목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비로소, 방송이 허구라는 사실이 지닌 의미를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 [패밀리가 떴다]가 설정이냐 아니냐로 한때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설정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란 사람도 있었는데, 어느 쪽 의견이 더 우세하고 조리가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우리는, 강렬한 백색광을 쏘는 서너개 이상의 조명장치와 방송용 카메라를 매달 수 있는 크레인과 열 명도 더 되는 스태프 앞에서 식사하고 뛰어다니는 연예인들을 찍은 영상을 두고서 그 장면의 현실성을 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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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지오-나디르 2009/07/06 19:49 # 답글

    요즘 제일 볼 만한 TV채널은 디스커버리
  • Noname 2009/07/07 19:08 #

    케이블인가... 이 동네 지역 케이블에서는 안 나오는 곳이군.
  • 언럭키즈 2009/07/06 19:51 # 답글

    전 학교에서 관련 내용도 배우고 인터뷰만 해도 얼마나 조작과 가식이 넘치는지 직접 옆에서 본 적도 몇번 있어서 "방송은 사기다!"라는 걸 채득하고 있지만, 그런걸 알고 봐도 가끔 속곤 합니다.[....]
  • Noname 2009/07/07 19:09 #

    분명 가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뭔가 속은 기분이 들더군요.
  • zhun 2009/07/06 22:04 # 삭제 답글

    요즘 버라이어티는 쿨해보이려고(자연스러워 보이려고?) 하는게 트렌드인가...
  • Noname 2009/07/07 19:10 #

    가식이 없다는 가식을 떠는 것이 요즘 방송의 트렌드같더라.
  • 종소리 2009/07/08 12:09 # 삭제 답글

    그러고 보면 몇 년 전 잡지에서 모연예인이 동경하던 쇼프로에 드디어 출연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이미 다 짜여 있는 부분이 많아 크게 실망했다는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나네요. 미국 프로레슬링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역시 버라이어티 쇼는 알면서 속아주는 게 미덕이 아닐지^^;; 그나저나 가식 없음을 연출하는 가식이 트랜드라니, 우리 방송도 상당히 심오해졌군요(...)
  • Noname 2009/07/08 15:26 #

    철학의 경지에 도달했습죠, 냅[...]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걸 알아도 가끔씩 선뜩선뜩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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