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by Noname

위대한 개츠비 (한글판 + 영문판) - 8점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화승 옮김/반석출판사

넘어설 수 없는 태생에 관한,
쓸쓸하고도 적막한 이야기.


사랑 이야기라는 사실 외에는 줄거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나갔습니다. 좀 의외였습니다, 이렇게 순정적인 이야기였을 줄이야. 데이지를 만날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는 개츠비의 모습은 이 소설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비극과 깊이 맞닿아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냥 그 모습 자체로 어쩐지 제겐 정겹고 흐뭇해 보이더군요. 이 사람 참, 귀엽지 않습니까? 닉 캐러웨이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는 개츠비의 순진한 열정에 공감하고, 그의 불행한 말로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이겠죠.

쓸쓸한 이야기입니다. 사교파티와 18세기 풍의 저택을 배경으로 할 때에도 이야기에서 시종일관 먹먹한 느낌을 줍니다. 그것은 이 소설이 언제나 벽의 존재를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 톰 뷰캐넌과 제이 개츠비, 데이지와 머틀 사이에는 큰 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벽은 개츠비의 어색한 매너, 뜯지도 않은 책, 격식을 잃은 파티, 상시적인 불안, 핑크빛 양복 등 삶의 모든 사소한 부분에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드러냅니다. 고귀해지고자 하는 그의 욕망과 그렇게 되어지지 않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그의 일상의 일부이자 삶 그 자체이기에, 개츠비는 이 벽을 결코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 모두 죽는 바람에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다는 듯 그의 음성은 자못 엄숙했다. 잠시 그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한번 그를 힐끗 보고 나서 그렇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후 전 젊은 왕자rajah처럼 파리, 베네치아, 로마 같은 유럽의 대도시에서 살면서 보석, 주로 루비를 수집하고 맹수 사냥대회에 다니기도 하고, 혼자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매우 슬픈 일을 잊으려고 말입니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실밥이 드러날 만큼 닳아빠진 상투어구라서 머리에 터번을 감은 '인형'이 톱밥을 질질 흘리며 볼로뉴 숲에서 호랑이를 추격하는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반석, 2005(1925). 98쪽.

데이지에 대한 순정에 대응되는 개츠비의 상승의지는 단순한 출세지향적 태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녀가 부자라서가 아니라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부유하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며, 무엇보다도, 그것이 그녀에겐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개츠비는 계급 혹은 신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간극에 압도당하고, 이윽고 그것을 쟁취하고자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를 얻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의혹과 불안뿐입니다. 디즈니랜드가 된 개츠비의 집에서 사람들은 그가 살인자나 밀주업자일 거라며 숙덕대고, 개츠비 스스로도 확고한 자신감을 얻지 못해 늘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불안은 현실이 되어 돌아옵니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받아들이지 않고, 급기야는 그녀의 죄를 감싼 채 살해당하고 맙니다. 데이지가 살해하는, 톰 뷰캐넌의 애인인 머틀은 개츠비의 거울상입니다. 둘 다 상승의지를 지녔고, 받아들여지지 못하며, 종국에는 파멸하고 맙니다. 차이가 있다면 머틀은 상대를 통해 위로 오르려고 하고 개츠비는 자신의 힘으로 오르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는, 전자는 톰에게 기만당하고 후자는 데이지의 실망을 살 뿐이지만. 벽은 견고하고 그들은 끝내 그것을 넘지 못합니다.

개츠비의 죽음을 보면서 닉 캐러웨이는, 과연 그가 바라던 것이 그렇게 헌신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자문하게 됩니다. 영원한 기다림을 약속했던 데이지는 톰 뷰캐넌의 재력 앞에 타협했습니다. 머틀을 사랑한다던 톰은 그녀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찬 그 '고상함'에 순진한 환상을 품고 스스로를 파멸시켜버린 개츠비에 대하여 닉은 분노와 비애를 느낍니다.

흥미로운 점은 개츠비의 장례식장에서 그 비애를 공유하게 되는 사람이 올빼미 눈이라는 익명의 사내라는 점입니다. 그는 소설 전반부에서 스치듯이 등장했을 뿐 개츠비의 죽음과는 어떤 연관도 없고, 심지어는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츠비의 서재를 통해 소설 속 그 누구보다도 먼저 개츠비가 하는 '연극'의 실체를 파악한 사람입니다. 개츠비의 연극을 파악하고 이해한 두 사람, 명문가 출신의 증권업자인 닉과 개츠비의 집에서 질펀하게 취해 있던(이스트에그와 영영 인연이 없을) 올빼미 안경이 각각 위와 아래를 대표하여 그의 마지막 길을 전송하고 애석함을 나누게 된 셈입니다.

전 이게 굉장한 소설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 소설을 잘 안 읽기도 하고,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소양이 깊거나 잘 아는 것도 아니라서요. 다만 간혹 보이는 "그냥 부유층의 사랑놀음 얘기"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먹먹하고, 안타깝고, 쓸쓸한 이야기였습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저는 반석 출판사에서 나온 판으로 읽었는데 번역이 매끄럽고 괜찮았습니다. 게다가 원서도 세트로 같이 싸게 팔고 있으니 미심쩍으면 대조도 가능해서 여러모로 편할 겁니다(전 귀찮아서 안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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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안단테 2009/08/10 23:57 # 삭제 답글

    너무 유명하기에 왠지 보지 않게 된(...) 작품인데 개츠비에 대한 인물상을 들어보니 흥미가 가는군요. 음, 이 기회에 교양도 쌓을 겸 피드백 좀 해봐야겠네요~ 추천 감사^^
  • Noname 2009/08/11 13:26 #

    꽤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살짝 안타깝기도 하고....
  • 에즈라 2009/08/11 00:19 # 답글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개츠비의 인생이 참 안타깝지요 ㅠ...
  • Noname 2009/08/11 13:27 #

    뒷맛이 참 씁쓸하지만, 그렇기때문에 더 인상적인 소설이더군요.
  • zhun 2009/08/11 00:39 # 삭제 답글

    나는 낭만하고는 거리가 먼 건지... 그저 개츠비란 양반이 답답하다는 생각 뿐이었네;;
  • Noname 2009/08/11 13:29 #

    그 답답함이 비애의 근원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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