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by Noname

유혹하는 글쓰기 - 8점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김영사

자화상 속에 담긴 창작론.
재미있고 와 닿고 유익하다.


스티븐 킹이 글쓰기에 대해서 말하겠다고 하는군요.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요령으로 소설을 쓰길래 그렇게 인기 있나 궁금해서 책을 펼치니, 어째선지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 임하는 '정신자세'나 창작에 임하며 필히 가슴에 새겨야 할 '계명' 따위를 늘어놓는 대신 자신의 삶에 대한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한 올 한 올 풀어나가며 자신이 어떻게 이야기를 쓰는 일에 매혹되고, 어떻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어떻게 창작하고 성공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베스트셀러 통속 소설가답게 그는 자신의 삶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로 형상화합니다. 그러면서 햇병아리였던 자신이 어떤 깨달음을 얻어 어엿한 작가로 거듭나는지를 단계단계 보여줍니다. 신문사에 일하다 첨삭을 받고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 성실한 독자로서 부인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마약중독과 자기환멸에 젖은 삶이 소설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얘기에는 선배 작가의 경험에 기반한 다양한 조언이 녹아 있습니다.

단어, 문장, 플롯, 문체 등 부문별로 나눈 뒤에 각 챕터별로 예문을 몇 가지 제시하며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여타 창작론과 달리, 스티븐 킹의 책에는 세부목차가 별로 없고 그나마 챕터도 기능적인 색인으로서의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교과서적인 설명이 아닌 에세이적인 줄거리에 따라 풀어나갑니다. 이런 방식이 지닌 장점은, 글쓰기의 요령이 단순히 이론적·기술적인 지식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이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지한 조언으로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그 덕에 독자는 조언에 따라야 할 필요와 그 효용을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리스본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66년 봄에도 그런 쪽지를 받았는데, 그 쪽지는 내가 소설을 수정하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프린터로 인쇄된 편집자의 서명 아래 이런 명언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수정본 = 초고 - 10%. 행운을 빕니다.'

그 메모를 쓴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앨지스 버드리스였는지도 모른다. 누구였든 간에, 그 사람은 나에게 크나큰 도움을 베풀어주었다. 나는 그 공식을 마분지에 베껴 내 타자기 옆의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그 직후부터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잡지사에 팔리는 원고의 수가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거절 쪽지에 적힌 친필 메모의 수는 급증했다.

……(중략)……

물론 이렇게 내가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이유가 반드시 그 '수정 공식'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찾는다면 그 무렵 나에게도 마침내 (예이츠가 노래했던 사나운 짐승처럼) 때가 왔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공식이 도움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그 공식을 보기 전에는, 가령 초고가 4천 단어 분량이었다면 수정본은 5천 단어로 늘어나기 일쑤였다(어떤 작가들은 내용을 점점 줄여나가지만 나는 옛날부터 자꾸 덧붙이는 것이 버릇이었다). 그러나 그 공식을 본 뒤로는 달라졌다. 요즘도 4천 단어짜리 초고는 3,600단어를 목표로 수정 작업을 한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2002(2001). 275~276쪽.

물론 이런 식의 서술법은 정보의 밀도를 현저하게 떨어트리는 탓에 예문의 빈도나 기술적인 조언의 상세함에서는 조금 부족함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문별로 나눠서 예문과 조언을 쏟아내는 책들에 비하면 부족할 수밖에 없죠. 그러나 (저자 말마따나) 기술적인 설명을 다루는 책은 세상에 이미 널렸으니 만약 그런 정보가 필요하다면 그 쪽을 참고하면 그만일 뿐입니다.

전하는 정보량이 한정된 대신 이 책은 아주 직접적이고 실전적인 조언들이 제시되는 점이 눈에 띕니다. 부사를 쓰지 말라, 수동태를 쓰지 말라, 플롯에 구애받지 말고 차례대로 줄거리를 짜나가라 등 조언들이 매우 직접적이고 확실합니다. 소설 창작론을 다루는 서적을 보면 많은 경우 조언이 추상적이고, 그나마도 확고하게 단언 못하고 주저하는 기색이 간혹 보입니다. 이건 어쩌면 창작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테제에 충실한 순문학계와 엔터테인먼트를 우선에 둔 통속소설가 스티븐 킹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초심자들의 입장에서는 확신을 주는 말들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죠.

읽기 즐거운 책입니다. 창작론이라고 딱딱하게 접근하지 않고 소설가답게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창작에 대해 주어지는 정보는 조금 얕을지 몰라도 대신에 창작이라는 현실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언이 영어 문장에 특화된 점은 아쉽지만, 뭐, 그걸 대체 누구에게 가서 따지겠습니까.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건, 시간을 때울 요량이건, 스티븐 킹의 팬이건, 부담없이 읽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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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안단테 2009/08/14 16:45 # 삭제 답글

    음, 확실히 초심자에게는 소화하기 힘들고, 전문가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기술적인 글쓰기 방법보다는 이런 식의 조언들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Noname 2009/08/14 20:40 #

    경험자의 조언같은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괜찮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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