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은하철도의 밤 - 미야자와 겐지 by Noname

은하철도의 밤 - 6점
미야자와 켄지 지음, 고선윤 옮김/다락원

음울하고 몽환적인 저승길 여행.
초월성을 향한 이상의 미려한 형상화.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습니다. (문학소녀 5권 탓에) 결말만 좀 알았고 불행한 삶을 산 작가의 유작이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고 읽기에 앞서 일부러 조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쾌한 얘기가 아닐 거란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이야기 전체가 죽음으로 가득할 줄이야. 세계는 은하수의 물 속에 있는데 그 수면 위를 달리는 열차를 타다니 이건 우주 여행이 아니라 숫제 저승길 여행이군요; 소설 속의 몽환적인 별세계는 서천의 꽃밭쯤 되는 걸까요. 어떤 면에서는 이 점이 일종의 반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로 내용을 훑어볼 때 비로소 죠반니가 했던 말들의 의미가 명확히 다가왔으니까요.

솔직히 말해…… 알쏭달쏭합니다. 초장에 묘사되는 죠반니의 삶, 켄타우루 축제와 은하열차에 오르는 때까지는 이야기를 좇아갈 수 있었습니다. 은하열차에 오르고 환상이 시작되면서 이야기가 이미지와 상징으로 뒤덮여 잘 읽히지 않습니다.그나마 화석 캐는 박사나 새잡이와의 동행에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그러나 남매와의 동행이 시작되는 9장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이 이미지만 남습니다. 공작도 철새도 괘종시계도 공병대도, 이야기를 풀 새도 없이 스쳐지나갑니다. 대체 뭐였는지. 그냥 스치는 풍경일 뿐인가? 원고가 유실되었다는 켄타우루스좌의 이야기를 읽으면 내용이 좀 명료해질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 한 권짜리 이야기에서 절반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데 원고 한 장 더 본들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기도 합니다. 저에게 이 이야기는 그저 설명 불가능한 한덩이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만큼이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군요.

다만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저자의 감성이 제가 수용 불가능할 정도로 예민하다는 점입니다. 죠반니는 순박한 새잡이를 향한 안타까움에 젖고 북쪽 바다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전갈은 자신의 몸을 바치지 못해서 후회하고 캄파넬라는 친구를 구하다 본인은 익사합니다. 주인공들은 모든 현실적인 것들이 있는 "3차원의 세계"를 벗어나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에 감화되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합니다. [인간실격]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이야기는 제가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성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야자와 겐지의 최후를 몰랐다면 전 주저없이 그 둘을 가식 혹은 거짓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지금도 저는 이 이야기에 "아름다운"이나 "선량한"이나 "투명한"이라는 말을 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미야자와 겐지는 자신이 쓴 이야기와는 다른 사람이지 않았을까, 여전히 의심스러워서요. 미야자와 겐지가 거대한 괘종시계 앞에서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할 때 숭고한 감정이 일기보다는 스산한 느낌만 듭니다. 제게 남은 것은 은하철도의 적막한 이미지와 캄파넬라의 죽음이 주는 쓸쓸함 뿐이네요.

후세 사람의 지레짐작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미완이라고 생각합니다. 켄타우루스 좌가 유실된 점에서도 그렇고, 마지막에는 장 구분도 안 하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두서없이 쏟아내는 것을 봐도 그렇고, 아무래도 미야자와 겐지는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느라 시간에 쫓긴 것 같습니다. 심상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책의 종반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주마등에 가깝습니다. [은하철도의 밤]은 저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농민들을 위해 살고싶다는 다소 철없지만 순수했던 자신의 이상을 있는 힘껏 형태로 남긴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이자 일종의 유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전 그저 그랬습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저와 체질적으로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번역은 크게 좋다 나쁘다 말하기가 뭣합니다. 일어 독해를 위해 나온 일한대역본이라 아무래도 문장이 직역 위주에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책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이건 역자를 탓할 부분은 아닌 듯하고, 옆에 뻔히 원문이 있지만 귀찮아서 국역문장에 의지해버린 제 잘못이죠 뭐. 읽다보면 내용이 알쏭달쏭해지는 대목이 꽤 나오는데 ―예컨대 쌍둥이좌에 관한 남매의 대화라든가― 원문을 읽어도 애매한 것을 보면 번역 탓은 아닌 듯. 여튼 맛은 다소 떨어져도 의미 파악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본어 공부하실 분들은 이 책이 그럭저럭 유용할 거라고 봅니다. 허나 순수하게 이야기를 즐길 목적이라면 좀 더 수려하게 번역된 책을―그런 물건이 혹 있다면― 고르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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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안단테 2009/08/26 01:25 # 삭제 답글

    과연,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는 생판 다른 내용이군요. 개인적으로 작품에 작가의 사정을 개입시키는 독서는 좋아하지 않아 일부러 외면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으면 이해가 생판 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읽기 전에 좋은 참조가 되었습니다. 감사!
  • Noname 2009/08/31 15:54 #

    저도 되도록 작가의 사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알아두는 쪽이 편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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