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by Noname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6점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문예출판사

퍽 흥미로운 사회과학
...이긴 하지만 번역이 조금....;;;


이제야 다 읽었습니다. 본문 뒤에 그만한 분량의 주석이 달려있긴 하지만 보아하니 이 책이 나온 뒤에 제기된 반론들에 대한 재반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듯 하더군요. 반론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재반론 읽어봤자 큰 의미는 없겠다는 판단에 그냥 제꼈습니다. 주석을 다 제꼈는데도 근 보름이 걸렸네요. 진도별 모의고사에 치여서 그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번역이 껄적지근 했습니다. [폭력의 세기]처럼 아주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골때리는 번역체 문장입니다. 소위 "인문고전 시리즈"에서 맨날 보는 예의 그 퀄리티.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 해봐야 입만 아프므로 본문으로 넘어가서, 이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네요. 신교가 자본주의 사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이 책의 결론이야 워낙에 널리 알려져 있는 터라, 사실 보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근거의 상세나 확인해볼 요량이었는데, 생각외로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았네요. 예컨대 이런 부분 :

몇 가지 교리를 고찰하는 것이 비신학적 독자에게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신학적 지식을 가진 독자에게는 경솔하고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줄 것이 분명하지만, 이 책에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종교적 사상을 역사적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념형적인 구성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역사적 현실에서 분명한 한계를 긋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그 현실의 가장 순수한 구성형태를 탐구해서만 그것들이 끼친 특수한 영향에 접근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문예출판사,1988(1920). 75쪽.

이제는 사회과학에서 일반화된 개념인 '이념형'을 굳이 독자에게 설명하고 필요성을 역설하는 점이 다소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뭐, 베버 자신이 주창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서도) 그밖에도 환원론을 경계하는 태도나 객관적인 현상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등 책의 상당부분이 탐구의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회 현상을 탐구할 방법에 관하여 아직 확실한 모델이 자리잡지 못한 시절이기에 그랬을 테죠. 방법론을 제시하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그 방법론에 따라 전개되는 논리와 도출된 결론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서 읽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내용면에서도, 이익을 좇는 욕망과 자본주의 정신이 서로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은 인상적이었고,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가 자본주의의 맹목적 이윤추구로 이어지는 논리도 결론 한 줄만 듣는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즐거움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생각을 자극하는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이 내리는 결론. 베버와 맑스는 흔히 대립항으로 제시되기에, 베버의 자본주의관(觀)의 뉘앙스는 희망적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중립적일거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물론 근거는 없습니다. 허나 책 읽기 전에 갖는 선입관이라는 게 으레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책에서 베버 왈,

청교도는 직업인이기를 바랐다――반면에 우리는 직업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금욕이 수도원의 방에서 나와 직업생활에 옮겨지고 현세적 윤리가 지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 금욕은 나름대로 기계적 생산의 기술적, 경제적 전제에 의존하는 근대적 경제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 우주는 오늘날 이러한 동력기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단지 직접 경제적 영리활동을 하는 자뿐 아니라――의 생활양식을 압도적인 강제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그 마지막 화석연료가 다 탈 때까지 아마 규정할 것이다. ……(중략)…… 오늘날 이 정신은 그 겉껍질에서――영원히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그것이 기계적 도태에 입각하는 한 그와 같은 지지를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정신의 유쾌한 후계자인 계몽주의의 장밋빛 분위기도 영원히 바래버린 듯하고, '직업의무'라는 사상은 이전의 종교적 신앙 내용의 망령처럼 우리의 삶 안에서 배회하고 있다.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문예출판사,1988(1920). 144~145쪽.

요컨대 프로테스탄티즘은 하느님의 영광을 지상에 실현시킨다는 생각을 동인으로 하여 직업에 맹목적으로 몰두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을 만들었는데,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력이 쇠퇴한 지금은 그 안에 있는 정신은 증발해버린 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만 홀로 가동하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구원에 대한 열망이라도 있던 청교도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시스템에 의해 인생을 직업에 올인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이라는 소리가 되겠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로는 맑스보다 심하군요. 맑스에게 자본주의는 역사 발전의 한 과정이지만,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다만 혼자서 폭주하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인 셈 아닙니까. 또 베버씨는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미래에 이 겉껍질 안에서 살 자가 누구인지, 이 엄청난 발전의 마지막에 전혀 새로운 예언자나 혹은 옛 정신과 이상의 강력한 부활이 있을지, 아니면――이 둘 다 아니고――일종의 발작적인 오만으로 장식된 기계화된 화석화가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물론 이 문화발전의 "최후의 인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옳은 것이 될 것이다. 즉 "정신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자 :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전레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문예출판사,1988(1920). 145~146쪽.

각설하고, 아이디어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줄곧 신경쓰였고, 부록에 딸려 있는 앤서니 기든스의 해설을 보면서 수긍하게 된 점입니다만, 이 주장, 실증적인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물론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적인 직업관의 상관관계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기는 합니다. 신학적인 면은 잘 모르지만 일단 둘의 상관관계는 크게 수긍이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유사성에 무게를 둔 나머지 정말로 그러한 마인드가 자본주의를 폭발적으로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는지에 대한 논증은 상대적으로 얇아졌다는 점입니다. 책 어디에도 신교지역에 상업이 부흥했다는 막연한 연관관계를 넘는, 주장에 못을 박을만한 실증적인 증거가 보이질 않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주요 설교자들이 내세운 교리와의 연관관계는 충실히 드러나지만 그것이 일반 교인들에게 자본주의 정신을 심어줬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 또한 보기 힘듭니다. 논문이 발표된 1904년이라는 시대적인 한계 탓일까요?

여튼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읽는 동안은 재미있었습니다. 헌데 오래 잡고 있기 버겁더군요. 이유는 이미 얘기했다시피, 번역이…; 상태가 어떤지는 제가 인용한 대목들만 잠깐 봐도 대충 이해가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사회과학적인 얘기를 할 때는 참을만해요. 근데 저런 문장으로 청교도 교리를 설명하는 대목을 읽고 있자면, 가뜩이나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인데 문장까지 주술관계가 꼬여 있으니 짜증이 나가지고 오래 붙잡고 있질 못하겠더군요. 다른 역서는 상태가 좀 나을까요? 새삼 다시 읽을 생각은 없지만 괜히 신경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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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위시 2009/09/17 17:39 # 답글

    베버의 이러한 논지가 푸코에게도 영향을 끼쳤다고 하죠. 푸코의 강의록들을 보면 간간히 니체나 베버를 언급하곤 합니다.
  • Noname 2009/09/18 11:41 #

    푸코... 저도 [성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 정도는 읽어볼까 싶은데, 기존에 사놓은 물건들도 기약 없이 쌓여만 있는지라 여태 손을 못 대고 있네요.
  • 위시 2009/09/18 19:28 #

    푸코에 빠지면 끝장입니다(...)
  • Noname 2009/09/20 16:24 #

    ㅎㅎㅎ 한층 기대되네요. :D
  • 안단테 2009/09/20 12:51 # 삭제 답글

    정신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자. 아주 예리하게 가슴을 헤집는군요(...) 확실히 발상 자체는 눈여겨 볼만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증적인 근거가 별로 없다는 마야 님 말씀처럼 약간 비약이 심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뭐랄까, 가톨릭의 느슨한 분위기에서 복지의 단서를 찾거나 불교의 제행무상에서 양자론을 유추하는 그런 느낌;;; (물론 그 정도로 허황되게 동 떨어진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풍기는 냄새가.)
  • Noname 2009/09/20 16:25 # 답글

    아무래도 사회학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평가받는 듯 합니다. 지금은 사회학계에서 저 주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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