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니콜라스 웨이드, 윌리엄 브로드 by Noname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8점
니콜라스 웨이드.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동광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과학이 이상적이지만은 않음을
명제가 아닌 실제 사례로 보여주는 책.


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전 과학에 대단한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이 사기를 저지르거나 편견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제법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 연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인간적인 오점이나 시스템의 문제가 응당 있으려니 여기고 있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조금 놀랐습니다. 과학 사기라는 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잦고, 벌어지는 규모도 크고, 과학사회에 널리 퍼져 있고, 그 뿌리도 깊군요.

이 책에 제시된 사건들만 따져도 표절·도용·조작·날조로 인한 대형 스캔들이 적어도 1년에 한 건은 꾸준히 터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도 어디 군소 기관이나 학문의 변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일 대학의 비제이 소먼, 스탠퍼드 의대의 졸탄 루카스, 코넬 대학의 마크 스펙터, 하버드 의대의 존 다시 사건 등 유수의 대학들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네요. 영미권의 대형 연구기관들이 얽힌 굵직한 사건들만 훑는데도 이런 식인데, 군소 기관들이나 비서구권의 경우를 포함하면 이 목록이 대체 어디까지 불어날지, 생각하면 참 아찔합니다.

이 책에서 과학기자 출신의 두 저자는 역대 과학사기 사례들, 특히 20세기 이후 과학이 전문화되면서 폭증하기 시작한 기만 사례들을 하나하나 전하면서 과학이 그 이념과 동떨이진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나갑니다. 논문수만 무한 증식시키는 과잉 경쟁, 재연에 의한 검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연구 형식, 엘리트주의로 인한 검증 생략, 책임성을 퇴색시키는 연구기관 내의 권력구조, 과학에 개입되는 정치권력과 도그마 등으로 인해 과학은 그 이념이 가정하고 있는 증명 및 자기검증의 시스템과 크게 동떨어진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검증가능한 엄밀한 학문으로서 과학이 지닌 가치는 독보적이지만, 거기에 무한한 신뢰를 주기에는 과학이 실제 작동하는 방식이 이념과는 크게 다르다고 이 책의 저자들은 말합니다.


전통적 과학관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 가장 큰 이유는 과학자들의 동기나 요구 대신 과학적 절차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이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걸치고 있다고 해서 삶의 다른 영역에서 그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열정, 야망, 좌절에 초연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과학은 직업이다. 그리고 이 직업에서 경력을 쌓고 출세하기 위한 수단은 과학문헌 형태로 발간된 논문이다. 성공을 거두려면, 연구자는 가능한 한 많은 논문과 정부 지원금을 확보하고, 대학원생을 고용할 수 있는 실험실과 재원을 구축하고, 논문 발표로 성과를 높이고, 과학상을 수여하는 위원회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하고,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고, 훗날 스톡홀름으로 초대받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현대 과학에는 직업적 출세에 대한 압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스템은 순수한 업적뿐만 아니라 외형적인 성공에 대해서도 보상을 한다. 대학은 논문의 질과 무관하게 발표 논문 숫자에 기초해서 교수 정년을 보장해준다. 젊고 재능 있는 학자들을 거느리는 연구소 소장은 그들의 연구 결과를 자신이 한 것인 양 보상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잘못된 공적 인정이 일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냉소주의를 조장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일상적이다.


윌리엄 브로드·니콜라스 웨이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미래인, 2007(1982). 28쪽.

제기하는 문제의식에는 십분 동의하지만 다만 한가지 달리 생각하는 것은, 과학이 실제로 시행되는 방식이 어떠하냐와 별개로 과학의 이념으로서 방법론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념과 현실이 완벽히 일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렇더라도 이념은 그 자체로 현실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 혹은 바로메터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중요한 것은 이념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지, 현실이 거기에 미치지 못 한다고 해서 과학의 이념이 지닌 가치를 부정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α 그러나 만약 소위 '과학의 이념' 자체가 오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생각해볼 문제일 것 같군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듣기로는 파이어아벤트의 주장이 그런 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반토막 세일한다길래 충동적[...]으로 집었을 뿐 큰 기대는 않았는데, 의외로 인상깊은 책이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비판은 여기저기서 물리도록 들을 수 있으므로 주제가 다소 뻔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래도 한번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사례들이 주는 임팩트는 "과학의 현실은 그리 엄정하지 않다"는 피상적인 명제와는 체감의 정도가 달랐거든요. 잠깐이지만 나중에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의 도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장이 다소 극단적이어 보여서 일부러 피한 책인데, 아무래도 그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보다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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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10/12 19:4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Noname 2009/10/15 12:52 #

    우리가 조용한 건 그나마 뒤늦게라도 부정을 캐낼 시스템조차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orz
  • 언럭키즈 2009/10/12 20:27 # 답글

    이것과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사기치는 과학자가 정말 많더군요.
  • Noname 2009/10/15 12:53 #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사례가 풍부할 줄은 몰랐습니다.
  • 안단테 2009/10/13 00:47 # 삭제 답글

    문득 "이산화탄소에 의해 지구온난화가 유발된다는 건 거대한 사기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일이 떠오르는군요. 확실히 과학은 종교를 대체했을 뿐, 하고 냉소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어두운 부분은 의식적으로 감추어진 채 맹목적으로 과학이란 기치 아래 정당하지 못한 정당성을 부여 받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방법론적인 문제는 최근 노벨상 관련해서 중국에서도 "자국이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이유는 연구자들이 밥그릇 싸움에 힘을 소비하기 때문이며 정부는 그들의 삶을 보장해주어야 우리도 업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기사가 뜨는 걸 봤는데, 그런 부분에 연계하면서도 한 번 생각해봐야 겠군요. (덧붙여 저도 힘 없는 정의가 실효성이 없는 것과 정의 그 자체의 정당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식의 관점에 동의합니다.)
  • Noname 2009/10/15 12:54 #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의 합리성이라는 가치를 놓을 수도 없고... 어려운 문제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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