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애마 그라파이어3 6X8이 말을 안 듣습니다.
작업하다가 돌연 인식이 끊어지는 것은 한 2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발생하던 문제였습니다만, 이제는 USB 포트에 꽂아도 아예 장치 인식 자체가 안 되는군요. 보아하니 이게 아주 맛이 가버린 것 같은데, 요즘 시대에 그라파이어3
[2003년 제품]를 유상 A/S 맡겨서 변변한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이대로 작별을 고해야지 싶습니다.
내가 이걸 언제 샀더라…. 연도는 잘 생각 안 나지만 타블렛 사겠다고 6개월 가까이 푼돈 그러모아 용산으로 쫄래쫄래 가서는 이곳저곳 들쑤시느라 여름 땡볕아래 직싸게 고생한 것은 확실히 기억나네요. 제가 좀 엉뚱한 짓을 잘 하지만 고3 방학때 그 짓거리를 한 것 같진 않고, 그렇다면 필경 2004년 8월 즈음이었을 겁니다. 뇌가 RAM이라 그날 있었던 일은 대부분 기억에서 휘발되고 없지만 여튼 처음 가져본 타블렛은 파랗고 쌔끈했으며 가격은 학생이 자기 용돈으로 지르기엔 피토하게 비쌌다는 기억만 선명합니다.
정말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타블렛만 있으면 그럴싸하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젖어서 절대반지를 차지하려는 골룸처럼 타블렛을 갈구하며 용돈을 찔끔찔끔 모아갔더랬죠. 실물을 직접 쥐어보고 나서야 결국 중요한 건 자기 손재간임을 깨닫고 좌절했지만, 그래도 있는 능력 없는 능력 쥐어짜며 딴에는 열심히 깨작거렸습니다.
문득, 블로그나 게시판 돌아다니다보면 그라파이어1을 지금도 쓴다는 분도 간혹 보였던 게 생각나네요. 그 사람들은 저렇게 간수 잘 하는데 난 이걸 어디서 어떻게 잘못 굴렸길래 벌써 망가뜨린 거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족히 4년은 잘 갖고 놀았으니 저거에 들인 값 만큼의 효용은 그간 충분히 뽑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타블렛들은 어떤지 잠깐 살펴봤습니다. 인튜오스는 여전히 토나오게 비싸군요. 그라파이어 시리즈는 와콤 홈페이지에 설명이 없네요. 4가 나왔었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 그라파이어는 아주 단종되어 버린 건지. 그리고 뱀부라는 처음 들어보는 묘한 기종이 눈에 들어오고요. 이게 그라파이어 대신 나온 보급형 타블렛인가… 미묘하네…. 물론 제가 쓰던 그라파이어3보다야 낫지만 4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음을 생각하면 스펙 차가 좀 어중간하네요. 버튼이나 터치링 등 주변적인 기능이 보다 많이 첨가되었습니다만, 난 그런 쪽으로 별 신경 안 쓰니 차라리 스펙이 더 높아졌으면 좋았을 텐데….
아~ 인튜오스 3 갖고십따, 6X11 와이드 사이즈로.
물론 가끔 낙서질 좀 하자고 35만원짜리 기기를 질러댈 정도로 간뎅이가 붓진 않았습니다만, 갖고싶은 것은 갖고싶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내 형편이나 실력에 인튜오스같은 진주목걸이는 바라지도 않고, 보급형으로 새로 하나 맞췄으면 싶네요. 어차피 수험생 신분에 있어봤자 방구석에 썩히며 먼지만 먹을 게 뻔하지만 이미 그라파이어 잡은 세월이 4년이다보니 그래도 타블렛이 아주 없으면 아쉬워서 어쩌나 싶습니다. 돈이 없으니 한동안 실행에 옮길 일은 없겠지만, 일단 뱀부에 대한 정보나 간간이 알아봐둬야겠네요.